[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코로나19 유행 장기화로 누적된 불안과 우울감, 그리고 해소되지 못한 놀이 욕구가 방역조치 완화 이후 ‘문제음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홈술‧혼술이 늘면서 원래 적게 마시거나 안마시던 사람의 음주율이 증가한데다가 방탄소년단 등 글로벌 아이돌 스타를 동원한 상업주의적 광고마케팅 등의 영향으로 과음, 폭음문화가 다시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일 중독포럼은 창립 9주년을 맞이해 온라인포럼 ‘포스트코로나19, 다시 과음/폭음 사회로 돌아가지 않으려면’을 개최하고 전문가들과 함께 최근 방역수칙 완화 관련 사회적 우려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과음, 폭음으로의 회귀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전반적 음주수준 줄었지만 ‘알코올 의존도’ 위험 증가
이날 포럼을 진행한 이해국 중독포럼 상임이사(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는 기쁨추구활동 불균형의 장기화와 상업주의 폐해로 인해 방역조치 완화 이후 과음, 폭음 등의 음주행태가 다시 증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로 회식, 모임 등이 감소함에 따라 1회 평균 음주량과 음주 빈도는 감소했지만 기쁨추구활동이 제한되면서 알코올 의존도를 높일 수 있는 ‘홈술’, ‘혼술’은 증가한 상황이다. 주4회 이상으로 기존 음주빈도가 높은 경우에도 음주량이 증가했다.
이 이사는 “홈술, 혼술이 늘면서 기존에 적게 마시던 이들의 음주 빈도가 증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양이 적어도 지속적으로 음주하게 되면 음주량 증가 가능성이 높고 알코올사용장애 위험성도 증가할 수 있다”며 “특히 ‘혼술’은 사람들과 어울려 음주하는 ‘사회적 음주’에 비해 감정을 안정시키거나 불면, 불안, 우울 등에 대처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언제 어디서든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음주의 횟수나 양의 통제가 어렵고 결과적으로 알코올 의존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술을 마시는 것이 당연한데 코로나 때문에 마시지 못했다’라고 하는 인식이 있는 상황에서 음주 접근성을 제한하는 제도도 전혀 없기 때문에 방역조치 완화시 참았던 것을 터트리는 보복 음주가 본격화될 수 있다. 술을 마시지 않던 사람들의 혼술이 늘어난 상태에서 소셜 드링킹(사회적 음주)이 다시 늘면 음주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중독포럼이 요식업소 영업시간제한 완화에 따른 음주행동변화 예측 관련 대국민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67.4%가 음식점 영업시간 연장시 술집, 식당 등 외부 영업시설에서 술 마시는 것이 증가할 것 같다고 응답했고, 67.5%가 음식점 영업시간 연장시 업무 상, 또는 지인 등과 술 마시는 것이 증가할 것 같다고 응답했다. 또 49.7%는 시간 연장시 취할 때까지 술 마시는 것이 증가할 것 같다고 응답했으며, 53.5%는 1차 이어 2차나 3차까지 술 마시는 것이 증가할 것 같다고 응답했다.
51.9%는 음식점 영업시간 연장시 집 근처 술집에서 술 마시는 것이 증가할 것 같다고 응답했고, 68.2%는 집에서 가족과 술 마시는 것이 감소할 것 같다고 응답했다. 53.8%는 한번 마실 때의 음주량도 증가할 것 같다고 응답했고, 60.2%는 술을 마시는 횟수가 증가할 것 같다고 답했다.
◇아이돌 등장하는 주류 광고 규제 필요
이와 함께 이 이사는 젊은층을 타겟으로 하는 아이돌동원 주류광고 등 지나친 상업주의적 광고마케팅의 영향으로 음주가 다시 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성인 95.5%, 청소년 96.7%가 아이돌 스타나 유명연예인들이 주류광고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성인 79.6%, 청소년 44.5%는 아이돌 스타나 유명연예인들이 등장하는 주류광고가 청소년이 술을 친근하게 느끼도록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으며, 성인 23%, 청소년 21.5%는 아이돌 스타나 유명연예인들이 출연하는 주류광고를 보고 술이나 음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응답했다.
이 이사는 “주류회사들이 코로나 방역완화 이후를 대비해 광고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유명 드라마에서 교복을 입고 등장하는 배우를 광고모델로 세우거나 아이돌을 출연시키는 주류마케팅은 젊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너무 명확해 우려된다”며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관련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유현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다수의 국가에서는 주류 광고 관련 매우 엄격한 규정과 지침을 적용하며 관리하고 있다. 영국, 태국, 미국 등에선 아이돌스타 등 연예인 술광고가 불가능하고,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등은 주류광고 자체가 불가능하다”면서 “우리나라도 특정한 미디어와 특정한 시간대 등을 규정하며 주류 광고를 제한하는 등 관련 규정들이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이견이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유 교수는 “각종 주류 광고들은 광고에 노출된 사람들로 하여금 음주 욕구를 경험하게 만들고, 음주 행위 자체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형성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며 “우리나라 주류광고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연예인(Celebrity)을 둘러싼 논쟁은 광고의 윤리적 측면과 상업적 측면에서 매우 첨예한 의견을 양산해 온 사안”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소위 ‘아이돌’이라고 하는, 청소년 등 젊은 계층의 소비자들에게 압도적으로 영향력이 높은 셀럽들의 모델 기용이 대폭 확대되며 미성년자들에게 미칠 수 있는 음주유발 효과 등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손애리 삼육대학교 보건관리학과 교수는 “최근 청소년을 대상으로 질적연구를 진행했었는데, 술을 마시지 않는 학생들마저 술을 마시는 장면을 보고 ‘나중에 크면 저렇게 마셔야 겠다’라고 답했다. 그만큼 음주 장면은 아이들에게 자극적이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음주폐해에 대한 국민 인식을 높이려는 노력도 동반돼야 한다.
김장래 국립중앙의료원 정신선강의학과 교수는 “최근 국민적 관심을 일으킨 고(故) 손정민군의 안타까운 사망사건은 우리 사회가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공공장소에서 과폭음을 허용하는지, 음주의 폐해가 알코올중독과 같은 병리적 음주 뿐 아니라 심각한 음주 관련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 확인시켜 주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문가들은 비용-효과적인 정책을 제시하며 주류에 대한 접근도 제한에 우선 순위를 두는 반면 국민들은 교육 홍보를 선호하고 주류 접근도 제한에는 가장 낮은 순위를 매긴다. 근거에 기반한 우선 순위가 높은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그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며 “음주 폐해에 대한 가시성이 높아질 수 있는 정보, 자료 또는 사건이 발생한 맥락을 이용해 그 대책으로 정책이 제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사고는 우리나라 음주 문화에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기회로 승화시켜야 한다. 해외에서는 음주상황 변경전략, 즉 요식업소에서 만취자가 인지되면, 더 이상 주류를 제공하지 않고, 안전히 귀가할 수 있는 보호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공공장소나 외식업소에서의 만취자에 대한 체계적 보호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고민할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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