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7월의 명상

[박한표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7월의 명상

박한표 (우리마을대학 제2대학 학장)

기사승인 2021-07-05 19:19:45
박한표 학장
7월이다. 목필균 시인의 <7월>이 생각난다. "한 해의 허리가 접힌 채/돌아선 반환점에/(…) 계절의 반도 접힌다//폭염 속으로 무성하게/피어난 잎새도 기울면/중년의 머리카락처럼/단풍 들겠지." 지난 반년을 되돌아 보고, 남은 반년을 어떻게 살까 고민해본다. 지난해 7월 1일 <인문 일기>의 화두는 '대나무의 삶은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 지는 삶이다"였다. 대나무는 두꺼워지려면 옆 누군가의 공간을 빼앗아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듯하다. 그래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다. 나이테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다. 대나무는 단단하기 위해서 어쩌면 비움을 선택했는지 모른다. 위로 곧기 위해, 그리고 다른 이와 함께 하기 위해 단단함과 비움을 선택한 대나무를 본받고 싶은 아침이다. 

대나무가 속을 비우는 데는 다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제 몸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속을 비웠던 것이다. 우리의 삶도 대나무에게서 배워야 한다. 살만 찌우고, 더 많이 소유하면, 단단하지 못하다. 대나무는 자기 속을 비웠기 때문에, 어떠한 강풍에도 흔들리지언정 쉬이 부러지지 않는다. 대나무처럼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비우는 것일지 모른다. 대나무는 휘어지지만 꺾이지는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유연성을 대처하는 태도이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는 것이다. 

얼마 전 가슴에 깊게 새긴 다음의 세 문장을 소환한다.
(1) "역경을 이기긴 쉬워도 풍요를 이기긴 어렵다."
(2) “자기가 가진 것을 사랑하면 행복하고, 못 가진 것을 사랑하면 불행하다.”
(3) "사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이 세 문장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소설이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6년 전 이 시기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벌써 일 년의 반이 지나갔다는 아쉬움보다는 아직도 반년이 남았다는 설레임으로 디테일하게 적어 본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를 다시 기억해 낸다. 나는 두렵지 않다. 최근에 이유 없는 어떤 불안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데, 무엇 때문일까? 아마 욕심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 더 내려놓고,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그리고 여기서 현재를 웃으며 즐겁게 살자고 또 다짐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살던 삶에서 답을 찾는다. 

(1) ‘지금 가진 것’과 ‘앞으로 가져야 할 것’을 구분하지 않는 삶을 산다.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며, 최대한 그것에 만족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살다가 죽으면 된다. 무엇이 두려운가? ‘앞으로 가져야 할 것’에 욕망하지 않는다. 지금 가지지 못한 것을 사랑하면 불행하다. 

(2) 남이 가진 것과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산다. 비교하면 나를 주눅들게 한다. 나는 나이고,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주눅들 필요 없다. 사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 

(3) 어떤 일을 할 때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뒤에서 잡아 줄 끈을 끊어야 한다.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줄(끈)을 자를 수 없다. (...) 그 줄을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살 맛이 없다.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거는 삶은 멋지다. 그러다 죽는 것이다. 죽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 아닌가! 

(4) “확대경으로 보면 물속에 벌레가 우글우글하대요.. 자 갈증을 참을 거요. 아니면 확대경을 확 부숴버리고 물을 마시겠소?” 조르바가 말한다. 너무 많이 따지고, 계산하면 아무 일도 못한다. 

(5) 조르바는 육체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어떤 일이든 몸으로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다만 우리가 자신의 몸을 두려워한다. 죽으면 그만인데. 몸이 약하다고, 힘이 없다고 주저하지 말고, 육체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이 걷고 산에 가고 주말농장에서 몸으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처럼 서생들에게는. 체력을 잃으면 안 된다. 많이 걷고, 위생에 신경을 쓴다. 그리고 좀 덜 마시고, 덜 먹었으면 하는데 잘 안 된다. 조르바에게는 지금 이 순간 살아 움직이는 몸뚱이, 그 자체로 충분하다.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그 일에만 집중한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6) 조르바의 우정은 서로를 향한 조건 없는 존중 속에 꽃을 피운다. 상대방을 ‘내가 아닌 모든 것'이라고 보고 대한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일이 최고의 우정이다. 다시 새겨 본다. 

(7) 조르바에게서 이것도 배웠다. 인간(특히 우리 시대의 인간)에게 부족한 것은 지성 아니 지식이 아니라 감성이고, 관념이나 정신이 아니라 육체이고, 경건함이 아니라 관능이다. 시스템(이성)의 통제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폴론의 합리성이 아니라, 디오니소스의 광란이다. 가끔 디오니소스(박카스)를 모시고, 이성으로부터 해방감을 느껴보아야 한다. 조르바는 세상의 논리로 보면, ‘나쁜 남자’이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은 ‘선행밖에 모르는 완전함’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마음 깊은 곳의 선의(善意)에서 우러나온다. 

(8) 조르바는 사람을, 그리고 예술과 자연을 사랑한다. 특히 사람을 사랑한다. 누구나, 나와 같이,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나도 그렇다. 사람은 다 똑같다. 그래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누구나 때가 되면 죽어 땅에 묻히고 구더기 밥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한 형제이다. 모두가 구더기 밥이 된다. 

(9) 조르바는 모든 것을 마치 ‘태어나 처음'인 것처럼 느끼고 바라본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감동한다. 물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처럼, 우리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 훨씬 더 자유로워진다. 고요한 물처럼,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하면, '세상이 다 돌아간다(반환)'는 이치를 깨닫는다. 잘 나간다고 좋아할 것 없다. 곧 내려가야 할 테니. 일이 잘 안된다고 걱정할 일 없다. 떨어지면 반드시 올라가는 것이 우주의 진리이니까. 문제는 이 진리, 즉 반대의 힘으로 끌려간다는, 어려운 말로 "반자도지동"은 심란하거나 정신없이 바쁘게 살면 그걸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10) 조르바는 광산 사업의 파국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춤을 춘다. 그 춤은 무게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처절한 노력으로 비친다. 그리고 그 춤 속에는 해방이 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판단한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 가가 시작되는 느낌의 해방을 엿볼 수 있다. 억압이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해방이 아니다. 지나치게 믿고 기대하고 희망하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남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이다. 

이렇게 열 가지를 나열해 보니, 마음이 처분해진다. 좋은 7월의 시작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일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그 아픔은 그 일 자체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당신의 생각에서 옵니다. 당신은 당장 그것을 무효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깊은 명상에서 나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은 힘을 준다.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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