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 리포트] 미충족 의료

[안태환 리포트] 미충족 의료

글·안태환 프레쉬이비인후과의원 대표원장‧칼럼리스트  

기사승인 2021-07-08 16:46:46
현상을 고찰할 때, 객관적 근거로 제시되는 통계청의 ‘2019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노인 3명 중 1명은 경제활동을 한다. 65세 이상 노인 고용률은 32.9%를 기록했다. 나아가 2017년 기준, 은퇴 노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경제개발협력기구 나라들 중 44%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아이들은 줄어들고 나이가 들어가는 이들이 많아지는 대한민국이지만 저소득 고령층의 삶의 질은 날로 저하되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을 놓지 않았던 영국 태생, 여든네 살의 노장, 켄 로치의 마스터 피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은퇴 후 일상을 살아가는 다니엘을 통해 관료주의의 그늘인 탁상행정의 민낯을 보여준다. 인간에 대한 체온 없는 행정절차에 포획당한 복지 시스템에 분노하지만 끝내는 그 제도에 의탁해야 하는 도탄의 현실을 그려낸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 후유증으로 평생을 해왔던 목수 일을 중단한 다니엘은 의사로부터 안식을 권유받지만, 질병 수당은 기각된다. 소시민 다니엘은 제도 장벽을 향한 부단한 이의를 제기하지만 권위와 절차에 좌절한다. 비상식적 상황들에 처한 그의 막막한 현실은 의료복지의 사각지대가 선진국인 영국에도 엄연히 존재함을 드러낸다. 

미충족 의료는 의료적으로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낮은 경제적 수준이나 건강 상태와 같은 요인들이 미충족 의료에 영향을 미친다. 저소득층과 1인 가구인 고령층, 나아가 여성일수록 미충족 의료를 경험할 가능성은 높다. 영화‘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의 등장인물들도 그랬다. 우리 국민 10명 중 1명은 여러 이유로 병원조차 제대로 가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의료복지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것이다.

치료의 사각지대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의 길은 선로가 끊어져 더 이상 길이 없는 아포리아의 상태이다. 이들에 대한 무감각은 공동체 정신의 퇴보이다. 의사 직업의 일상은 늘 슬픔과 고통에 직면한다. 어느 순간 그 앞에서 무감각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타인의 고통에 대해 공감의 인색함을 수반하기도 한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사람의 삶이 본디 모질고 지난한 것이라고 체념해버릴 때 슬픔과 고통 앞에서의 태도는 건조해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의료 사각지대에 방치된 환자의 고통은 배가 된다. 의사에게 있어 아픈 환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다. 인술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라는 결기를 곧추세우는 태도는 의사로서, 한국 사회 시민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다.  

배려와 나눔의 너른 시선은 사회 공동체의 최우선 가치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공감은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나이 듬에 대한 내 문제로의 받아들임이다. 노동할 능력도, 함께 할 가족도 없는 이들이 스스로가 무기력해지고 병들어 갈 때 사회적 공감은 그래서 더 절실하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우리 사회는 보편적 고통을 감내하길 요구받는 시대에 직면해 있다. 보편적 이윤을 남기려는 경제 시스템이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코로나19로 인해 더더욱 가속화되었고 세계적 흐름이다. 모든 국가는 이럴 때, 복지의 평준화를 선택한다. 예외는 없다. 이 모진 팬데믹의 굴곡진 계곡을 건너가며 보편성이라는 대의 명제의 그늘에서 미충족 의료의 사회적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구석구석, 소외된 이웃에 대한 세밀한 의료 서비스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몹쓸 감염병 앞에 유독, 사회적 약자들이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미충족 의료는 국격의 수준이다. 적어도 아픈 이들이 치료를 받아야 할 권리가 보편적 복지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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