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끝이 아니다…청소노동자의 죽음, 남은 과제는

사과는 끝이 아니다…청소노동자의 죽음, 남은 과제는

기사승인 2021-08-07 06:20:02
지난달 7일 오후 12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청소노동자 이모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유가족 A씨가 기자회견에서 발언에 나섰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서울대가 고개를 숙였다. 다만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들이 남았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에서 청소노동자·유가족 등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오 총장은 이날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근로기준법 준수뿐만 아니라 인권 문제도 넓게 살피겠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해 전체적인 조직 문화를 개혁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26일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였던 고(故) 이모씨가 건물 내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심근경색에 의한 병사였다. 유가족에 따르면 고인은 건강했다. 지난 2019년 청소노동자 채용을 위한 ‘국민체력100’ 인증기준을 문제없이 통과했다. 

사망 이유로 과도한 업무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지목됐다. 고 이씨는 200여명이 사용하는 기숙사를 홀로 청소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4층 계단을 오르내렸다. 6월9일부터 청소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필기시험이 실시됐다. 각 건물의 준공연도를 물었고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 또는 한자로 쓰게 했다. 회의시간 ‘드레스코드’도 지시됐다. 남성에게는 정장 또는 남방과 구두, 여성에게는 “회의 자리에 맞는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참석해 달라”고 했다. 노조는 “청소노동자들이 고심 끝에 집에 있는 좋은 옷을 입고 회의에 참석했음에도 복장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30일 청소와 관련 없는 시험과 드레스코드 지시 등을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판단, 서울대에 개선을 지도했다. 이에 오 총장은 지난 2일 입장문을 통해 유가족과 청소노동자 등에게 사과했다. 청소노동자가 숨진 지 38일 만의 사과였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에서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열린 청소노동자, 유족 등과의 간담회에서 숨진 청소노동자의 남편인 A씨로부터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연서명 결과를 전달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권센터 조사, 반쪽짜리 될까…유가족·노조, 공동조사단 촉구

사과는 끝이 아니다. 아직 문제는 남았다. 유가족과 노조는 청소노동자 사망과 관련 공동조사단 구성을 요구해왔다. 노동 강도 조사 등을 통해 사망원인을 규명하고 재발을 막자는 취지에서다. 학교 측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학내 독립기구인 인권센터를 통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인권센터 조사는 ‘반쪽짜리’에 그칠 확률이 높다. 유가족과 노조는 공동조사가 아닌 학내 자체 조사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

청소노동자 사망이 산업재해(산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러 고개를 넘어야 한다. 학교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노조에서 산재담당 공인노무사 업무 협조와 오 총장 명의의 탄원서를 촉구했다.

민주노총 전국일반노조 관계자는 “고인의 노동 강도 조사 등을 위해서는 학교의 내부 자료가 필요하다”면서 “학교에서 노조 의견을 청취하겠다고 했지만 5일 간담회에서 배제됐다. 향후 학교의 협조가 공동조사단 구성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노동자 사망과 관련 서울대학교 교정에 학교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사진=이소연 기자

“갑질 사실 아니다” 부인했던 서울대 구성원, 징계는  

2차 가해에 대한 징계도 요구되고 있다. 청소노동자 사망 후 기숙사 부관장과 서울대 학생처장 등이 온라인에서 노조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학생처장이었던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9일 자신의 SNS에 “고인의 명복을 빈다”면서 “한 분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게 역겹다. ‘악독한 특정 관리자’ 얘기는 모두 사실과 멀다”고 주장했다. 시험과 드레스코드를 지시한 팀장을 옹호한 것이다. 구 교수는 “‘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다’ 부분은 정치권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해명한 후 글을 삭제했다. 

관악학생생활관 기획시설부관장인 남성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도 같은 달 10일 기숙사 홈페이지에 “민주노총 측에서는 이 안타까운 사건을 악용해 근무환경이 열악하다거나 직장 내 갑질이 있었다는 등 사실관계를 왜곡하면서까지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며 “안타깝고 슬픈 사고이지만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관리자를 억지로 가해자로 둔갑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는 관악학생생활관에서 생활 중인 기숙사생들에게 문자로도 공지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해당 게시글은 삭제된 상태다. 

구 교수는 같은 달 12일 사의를 표하고 학생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남 교수도 지난 2일 기숙사 부관장 보직 사의를 밝혔다. 다만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징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직을 내려놓는 선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서울대학교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이 학교 측의 갑질과 관련해 발언에 나섰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다시는 한 명도 떠나보낼 수 없다” 노동자 처우 개선은 

청소노동자의 실질적인 처우 개선도 촉구된다. 청소노동자 인력 충원 등이 골자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과 노조는 5일 △인력충원 등 근본대책 마련 △책임있는 관리자 징계 △노조와의 협의체 구성 등이 담긴 연서명을 서울대에 전달했다. 연서명에는 8305명과 312개 단체가 참여했다. 

이재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학생대표는 “2019년 폭염 속 창문 하나 없는 열악한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가 사망했다. 학교에서는 이후 휴게공간을 개선했지만 노동자 사망이 또다시 발생했다”며 “갑질과 노동 강도 등에 대한 포괄적인 해법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기관장 발령과 총장 발령으로 이원화된 서울대의 고용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학생대표는 “청소 및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총장 발령이 아닌 기관장 발령으로 고용된다”며 “인력충원 등에 대해 기관은 예산 등 권한이 없다고 선을 긋는다. 대학본부는 책임을 기관으로 미룬다”고 질타했다.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는 쓰레기 분리수거장. 앞서 정부는 청소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해 100ℓ 봉투의 사용을 제한하기로 했다. 사진=이소연 기자
유가족은 향후 개선방안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고 이씨의 남편 A씨는 오 총장과의 간담회를 마친 후 “개선 의지를 본 것 같다. 전반적으로 서울대가 걸어왔던 길과 앞으로 갈 길에 대해 돌아보겠다는 말씀을 해주셨다”며 “학교의 변화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지난 2일 입장문을 통해 “고인과 유족, 그리고 피해 근로자 모든 분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용노동부의 행정 지도 내용에 따라 충실히 이행 방안을 준비해 성실히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노조 의견을 적극 청취해 협의하겠다고 전했다.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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