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조계원 기자 =#A씨는 반년전 한 공인중개사의 소개로 서울에 전셋집을 구했다. 그러나 이사 반년 만에 부동산 가압류 통보를 받았다. 집주인이 빚을 갚지 않아 집을 가압류하겠다는 통보였다. 특히 A씨는 선순위 근저당권 설정에 따라 경매가 진행돼도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 한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집주인이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고 A씨의 전입신고 당일 저당권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A씨는 거래를 중개한 공인중개사에게도 전세사기의 책임이 있다며 배상을 요구했지만 공인중개사는 법적으로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전셋값이 치솟자 이를 노린 전세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집을 구하는 세입자들은 이러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중개료를 내고 공인중개사에게 거래 중개를 맡기고 있다. 하지만 정작 피해가 발생했을 때 공인중개사의 역할은 제한되있어 피해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11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HUG(주택도시보증공사)와 SGI(서울보증보험)에 접수된 보증금 미반환 사고 현황은 2017년 273건에서 지난해 3251건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늘어난 전세사기 가운데 상당수는 확정일자의 대항력이 익일부터 발생하는 점을 노린 수법이다. 확정일자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임대차 보증금에 대해 제3자에게 대항력을 갖게 하기 위해 계약 체결일자를 관련 기관에서 확인해 주는 세입자 보호 제도를 말한다.
예컨대 전세 세입자가 확정일자를 1일 받으면 법적 대항력은 다음날 0시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반면 대출금의 저당권, 매매에 따른 등기 등은 신고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따라서 집주인이 세입자의 대항력이 발생하기 직전에 대출 등을 받아 잠적해 버리면 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렵게 된다. 집주인의 채무불이행으로 주택을 경매에 넘겨도 배당 우선권이 대출금, 전세보증금 순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이를 이용해 전세사기에 나선 집주인들을 원망하면서도, 거래를 중개한 공인중개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공인중개사가 거래를 중개하면서 권리변동 등을 설명해줄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또한 공인중개사가 거래를 중개한 만큼 중개 물건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다만 이러한 주장은 현행법상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엄정숙 부동산전문 변호사는 “전세사기 등을 두고 공인중개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공인중개사가 공모한 경우로 한정된다”며 “중개 물건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들은 중개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공제에 가입해 있다. 법인인 개업공인중개사는 2억원 이상, 법인이 아닌 개업공인중개사는 1억원 이상 한도의 공제 가입이 의무화된 상태다. 그렇지만 전세사기는 손해배상 공제의 배상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한국공인증개사 협회 관계자는 “공제는 공인중개사의 과실이나 고의에 따른 중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배상해주는 것으로 전세사기는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전세사기는 전세보증보험 등을 통해 개인이 대비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실질적으로 공인중개사도 작정하고 나선 전세사기를 예방할 방법이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는 “확정일자가 다음날부터 대항력을 갖춘다는 점을 이용해 사기에 나선 것은 공인중개사도 예방하기 어렵다”며 “공인중개사가 개인의 대출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서 몰래 거래하는 매매계약을 확인할 방법도 없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공인중개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계약자 보호를 위한 공인중개사의 책임이 강화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한 전세계약자는 “공인중개사가 단순히 물건을 소개하고 수백만원에서 천만원이 넘어가는 수수료를 받아가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공인중개사는 자신이 중개한 거래에 일정 부분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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