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색 규제②] “제2의 한한령? 글쎄요, 아직은…”

[홍색 규제②] “제2의 한한령? 글쎄요, 아직은…”

기사승인 2021-09-09 06:00:19
K팝 아이돌 팬클럽 웨이보에 올라온 공지. 중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건전하게 팬 활동을 이끌겠다는 내용이다.   웨이보 캡처.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당국의 정화 정책에 따라 팬들을 건강하고 교양 있는 네트워크 환경으로 이끌겠습니다.” 그룹 블랙핑크의 중국 팬덤은 최근 웨이보에 이런 공지를 올렸다. 그룹 갓세븐, 가수 선미 등 K팝 가수는 물론, 중국 아이돌 그룹 엑스폼(ixform) 등의 팬덤도 약속한 듯 비슷한 공지를 웨이보에 게시했다.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 에이핑크 멤버 정은지 팬덤 등은 웨이보 계정 이름에서 ‘모임’을 뜻하는 ‘吧(bar)’를 뺐다. 무슨 일일까.

시작은 지난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오디션 프로그램 ‘청춘유니’에서 출연자 팬클럽이 투표를 위해 협찬사 우유를 사재기 한 뒤 내용물을 버리는 영상이 공개돼 중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당국은 이런 행동이 먹거리 낭비를 금지한 시진핑 주석의 지시를 정면으로 위반했다며 단속에 나섰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는 지난달 말 ‘무질서한 팬덤 관리 방안’을 발표하고 ‘연예인을 위해 모금하는 팬클럽 해산’ ‘음원 중복 구매 금지’ 등을 규정했다.

중국에 불어 닥친 연예계 정풍운동(1940년대 공산당이 당 내 잘못된 풍조를 바로잡자며 펼친 정치문화운동)에 K팝 기획사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온라인 팬 활동이 위축되면 팬들의 구매력도 떨어질 수 있어서다. 업계에선 중국 팬클럽이 추진하는 대형 옥외 광고 등은 당분간 불가능하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의 팬클럽은 거금을 모아 비행기 광고를 하려다가 60일간 웨이보 계정을 정지당했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이런 조치가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매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문은 “한국 연예산업이 음반이나 아이돌 관련 상품 판매에서 중국 팬클럽에 많이 의존한다”며 “중국의 스타 추종문화는 한국이 근원이며 연예계 정풍운동에서 한국 스타가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K팝 기획사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의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아직 피부로 와 닿는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팬클럽 웨이보 계정 정지는 우리나라로 치면 온라인 커뮤니티 한 곳을 막은 셈인데, 이것이 음반 등 관련 상품 판매량 하락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잘 모르겠다”는 관측이다. 또 다른 기획사 관계자는 “중국이 K팝을 겨냥했다기보다는, 자국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의 사생활 검증과 퇴출에 더욱 힘을 쏟는 분위기”라며 “당장 한국 기획사가 받을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상위 국가별 음반 수출 현황.   국세청 제공.
음반 시장에 가해지는 타격도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중국 팬들의 대량 공동구매에 제약이 가해질 수는 있지만, 2016년 ‘한한령’(한류 제한령) 이후 중국 시장 의존도가 낮아져 그 영향이 크지 않으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한국 음반 전체 수출액 1억2340만 달러 가운데, 중국으로 수출된 음반 판매액은 1552만 달러로 13% 수준에 머물렀다. 한국 음반 전체 수출액 중 대(對) 중국 수출액 비율은 2017년 36%, 2018년 26%, 2019년 18%로 꾸준히 감소했다. 지난해엔 미국으로 수출된 음반 판매액이 중국을 앞지르기도 했다.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원은 “최근 몇 년 간 대륙별 K팝 음반 수출 비중을 살펴보면, 아시아의 비중은 줄어들고 북미와 유럽 비율이 증가했다”며 “중국의 이번 조치가 단기적으로 100만~200만장가량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올해 K팝 음반 수출량이 5000만장 이상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국의 규제에 따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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