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새비지’는 듣는 이를 빠르게 중독시키며 순식간에 멜론 등 주요 온라인 음원사이트 인기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새비지’가 실린 에스파의 첫 미니음반은 일주일 만에 27만 장 가량 팔리며 한국음악콘텐츠산업회가 집계하는 가온차트의 주간 음반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해외 인기도 뜨겁다. 에스파는 미국 주간지 ‘피플’이 지난 13일(현지시간) 발표한 ‘2021년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스타들’에 K팝 가수 중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음반은 20개 지역 아이튠즈 톱 앨범 차트에서 1위에 랭크됐다.
전문가들은 에스파의 독특한 세계관을 인기 비결로 꼽았다.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세계관으로 다른 그룹과 차별화를 이룬데다, 앞선 발표곡 ‘블랙맘바’와 ‘넥스트 레벨’이 흥행한 덕에 대중이 에스파 세계관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가요관계자 A씨는 “에스파는 블랙핑크, 있지 등 다른 그룹과 확실하게 차별화한 세계관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며 “여기에 SM엔터테인먼트 특유의 비범한 가사와 앞선 사운드가 더해져 폭발력을 낸 것 같다”고 말했다.
‘광야’(무규칙·무정형·무한의 영역), ‘아이’(æ·인간이 제공한 디지털 데이터를 토대로 만들어진 존재), ‘나이비스’(nævis·인간과 아이가 연결되도록 도와주는 존재) 등 세계관에서만 통용되던 개념들도 대중에게 친숙해진 모양새다. ‘블랙맘바’와 ‘넥스트 레벨’ 이후 에스파 세계관이 온라인에서 밈으로 유행하면서다. 비현실적이고 유치하게 여겨졌던 세계관이 밈이라는 온라인 놀이문화와 만나면서, 에스파가 내놓은 콘텐츠들도 각종 패러디와 함께 끊임없이 회자되며 확장될 수 있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대중음악은 대중에게 얼마나 익숙해지느냐가 흥행을 좌우하는 관건인데, 에스파는 ‘넥스트 레벨’로 이미 스타덤에 오른 상태라 대중이 에스파 세계관을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서 “‘새비지’가 ‘넥스트 레벨’보다 일찍 발표됐더라면 성공을 보장하기 어려웠을 텐데, 적절한 시점에 팀의 개성을 보여주는 곡을 냈다”고 봤다. 이전 발표곡들로 대중의 관심을 유발한 덕에 “어렵고 난해한 곡이더라도 한 번 더 듣게 만드는 힘”을 가질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역시 “‘블랙맘바’와 ‘넥스트 레벨’에 대중적 흥미로운 포인트들을 잘 심어놔 에스파 세계관에 대한 거부감과 문턱이 낮아졌고, 이로 인해 ‘새비지’가 초반 높은 화제성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비지’는 새로우면서도 고전적인 느낌이 있다. 그룹 동방신기와 NCT 등이 보여줬던 SM 음악 고유의 특징을 에스파가 잘 이어받았기 때문에 SM 콘텐츠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을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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