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빈 “돌아가도 ‘너를 닮은 사람’ 만날래요” [쿠키인터뷰]

신현빈 “돌아가도 ‘너를 닮은 사람’ 만날래요”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1-12-14 06:00:12
배우 신현빈.   최성현 스튜디오 제공.

그 초록 괴물은 처연하고 슬퍼 보였다. 무기력한 눈은 허공을 바라보다가도 분노로 일렁이곤 했다. 자기 삶을 앗아간 이에게 복수할 날만 기다리는 모습은 처절한 광기와도 같았다. JTBC ‘너를 닮은 사람’의 초록 괴물, 구해원이 초록색 코트와 함께 나타날 때면 화면에는 금세 서늘함이 감돌았다. 

구해원을 연기한 배우 신현빈을 최근 서울 청담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온화한 미소로 인사를 나누던 그는 ‘너를 닮은 사람’ 이야기가 나오자 일순 차분한 얼굴이 됐다. “구해원은 안타까운 인물”이라고 운을 뗀 그는 “재능과 기회가 있던 사람이 한순간에 자기 삶조차 잃어버리고 산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고 말을 이어갔다. 안쓰러운 인물이어서 더 마음이 갔다. 사전제작으로 진행된 ‘너를 닮은 사람’은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과 촬영기간이 대부분 겹쳤다. 강행군일 게 뻔했다. 하지만 고민 끝에 신현빈은 ‘슬의생’과 ‘너를 닮은 사람’ 모두를 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거든요. 이런 대본을 쉽게 만날 수 있을까 싶었어요. 구해원이라는 인물부터, 사람 사이 관계를 이렇게까지 깊이 있게 다루는 작품은 찾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어요. 무리해서라도 도전을 결심할 수밖에요. ‘슬의생’과는 촬영기간이 6개월 정도 겹쳤어요. 다행히 두 작품의 감독님들이 제 일정을 많이 배려해주셨어요. ‘너를 닮은 사람’을 먼저 마치고 ‘슬의생’에 집중할 수 있었죠.”

JTBC ‘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JTBC스튜디오 제공.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마음 편히 밥 먹을 새도 없었단다. 그런데도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구해원은 감정의 양극단을 달리는 인물이다. ‘슬의생’ 장겨울은 무뚝뚝하고 차분하며 열정적이다. 확연히 다른 인물을 동기간에 연기하는 건 데뷔 11년 차인 그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던 신현빈은 “구해원만 연기했다면 그 감정에 매몰됐겠지만 ‘슬의생’ 장겨울을 오가다 보니 캐릭터를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됐다”며 생각에 잠겼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감정에 휩쓸리지 않게 현장에서만 구해원이 되려 했어요. 다른 작품과 병행하다 보니 체력적으론 힘들었지만 덕분에 머릿속에서 캐릭터가 더 선명해지더라고요. 한 인물에게만 집중하면 제 해석에 치우쳐서 연기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거든요. 고현정 선배님도 두 작품을 한꺼번에 하면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정말 맞았어요. 다시 돌아가도 ‘너를 닮은 사람’과 ‘슬의생’을 동시에 할 것 같아요. 후회가 전혀 없어요.”

구해원은 여전히 신현빈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신현빈은 “‘너를 닮은 사람’은 각자의 삶에서 각자가 주인공이라는 당연한 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라면서 “지금도 구해원이 어딘가에서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며 애틋함을 내비쳤다. 극 중 구해원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정희주(고현정)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 출발에 나선 구해원을 보며 이런 말을 한다. ‘아주 오랜만에 나는 너를 보았다. 이제 막 이야기를 시작하는 너를. 이젠 나의 이야기를 끝낼 차례다.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신현빈은 이 대목을 언급하며 “그렇게 구해원의 삶은 이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JTBC ‘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JTBC스튜디오 제공.

“복수를 마친 구해원은 다시 붓을 잡고 그림을 그려요. 그림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그릴 수 있는 거잖아요. 구해원은 삶에 의욕이 없어 그림도 그릴 수 없었어요. 자신의 삶을 되찾고 나서야 다시 작가로서 살 수 있게 됐죠. 복수에 매달린 것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요. 가진 게 없어도 꿈과 희망을 품고 제 인생의 주연으로 살던 여자가 갑자기 조연이 된 거니까요. 정희주에게 사과만 받으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 같아요. 결국 모든 게 끝나자 제 자리를 찾게 된 거죠.”

신현빈에게는 구해원의 복수가 중요했다. 복수 후 삶을 되찾은 그를 보며, 신현빈은 사랑과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신현빈은 “모두가 이면에서 다른 생각을 하겠구나 싶으면서도, 반대로 내 곁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이 더 소중해졌다”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너를 닮은 사람’을 함께한 고현정, 김재영 역시 소중한 사람들이 됐다. 또 다른 소중한 인연도 생겼다. 그는 일찌감치 JTBC 새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과 티빙 오리지널 ‘괴이’(감독 연상호)를 차기작으로 정하고 새 캐릭터를 맞을 준비에 전념하고 있다. 순풍에 돛단 듯, 신현빈의 오늘은 그렇게 평화로이 흘러간다.

“그냥, 운이 좋았어요. 언제나 작품들이 시의적절하게 찾아오더라고요. 재밌어 보여서 참여하다 보니 지금까지 그 흐름이 이어졌어요. 감사한 일이죠. 바란다고 되는 일이 아닌 걸 잘 아니까요. ‘너를 닮은 사람’은 제게 새로운 지점이 됐어요. 두 인물을 동시에 연기해봤고, 고현정 선배님 덕분에 밀도 있는 연기가 뭔지를 느꼈죠. 사랑을 듬뿍 받은 시간이에요. 열심히 달려가고 있으니 내년에도 좋은 결과들을 내고 싶어요. 건강히 연기하고 틈틈이 쉬고 다시 일하고… 이렇게 쭉, 흘러가고 싶어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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