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인간이 다른 차이는 '신은 죽지 않는다'이다. 그러나 인간은 죽는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생로병사,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늙는다는 것은 신의 은총'이라는 독일 속담이 있다. 장 폴 사르트르도 단언했다. '나이 듦은 또 하나의 축복'이라고. 그러나 과연 늙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늙고 싶지 않아 한다. 늙고 싶지 않다는 것은 죽고 싶지 않다는 것과 통한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모두 살고 싶어 한다. 그것도 아주 오래오래. 그러나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그것은 축복일까, 형벌일까?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여인이 시빌레(Sibyl)이다. 그녀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무녀(巫女)를 총칭하기도 하지만 원래는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이었다. 시빌레가 젊고 아름다울 무렵, 아폴론은 그녀에게 구애하며 약속했다. "내 사랑을 받아준다면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소." 시빌레는 손에 한 움큼의 모래를 쥐고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 모래알의 수만큼 오래 살게 해주세요."
영원히 사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었지만 아폴론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시빌레가 깜빡 잊고 놓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젊음이었다. 모래알의 수만큼 오래 살게 해 달라고는 했지만, 젊은 모습 그대로 살게 해달라는 말을 미처 하지 못한 것이다. 시빌레는 소원을 이루었다. 그러나 마음이 변하여 더 이상 아폴론을 사랑하지 않았다. 화가 난 아폴론은 그녀에게 약속한 대로 모래알만큼의 수명을 주었다. 그런데 늙도록 내버려 두었다. 시빌레는 결국 늙고 지친 몸으로 무수히 많은 세월을 살아야 했다. 700년도 넘게 살고 나니 시빌레의 소원은 오직 한 가지였다. "제발 나를 죽게 해주세요."
늙어서 몸이 점점 줄어든 시빌레는 나무 구멍 속에 넣어져 매달려 있었다. 오직 죽고 싶다는 소원 하나를 마음에 품고서. 시빌레는 영원히 살았으나 영원히 살았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이었다. 제발 죽게 해달라는 소원 하나만 품고 살아야 했던 그녀가 우리에게 전해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축복처럼 받아들이라고. 죽음이 있기에 주어진 생이 소중한 것이라고.
우린 인생이 너무 짧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짧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많은가. 꽃이 아름다운 것은 그 꽃이 속절없이 지기 때문이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뜨겁던 그 사랑이 쓸쓸히 식어 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 역시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그래서 소중하고 그래서 아름답다.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생각하라! 때가 오면 자랑스럽게 물러나라. 한 번은 살아야 한다. 그것이 제1의 계율이고, 한 번만 살 수 있다. 그것이 제 2의 계율이다." (에리히 케스트너, <두 가지 계율>).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을 쓴 이근후 교수님이 인용하신 글이다.
한 번만 살아야 하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오늘 아침의 화두이다. 고 신영복 교수의 사유를 이근후 교수는 인용했다.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다 하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 되고 극복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문장 속에 답이 있다고 본다. 그래 즐겁게 오늘도 주어진 컴퓨터 문제를 긍정적으로 하나씩 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