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신인’ 무지개 “미련이 우릴 이끌었다” [쿠키인터뷰]

‘중고 신인’ 무지개 “미련이 우릴 이끌었다”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1-12-28 06:00:02
그룹 무지개. 왼쪽부터 김승열, 최선웅, 박건우, 이정욱. 유엠아이엔터테인먼트.

지난 9일 데뷔한 보컬 그룹 무지개는 ‘중고 신인’이다. 맏형 김승열은 2004년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서 공연하며 실력을 쌓은 재야의 고수다. 막내 박건우는 2013년 아이돌 그룹 LC9으로 데뷔해 활동하다가 최근 뮤지컬 배우로 전향했다. 평균 경력 9.5년. ‘중견’이라고 표현해야 더 어울리는 네 남자가 ‘신인 그룹’으로 뭉친 건 미련 때문이었다. “채워지지 않은 갈증이 있었어요. ‘내 노래를 부르고 싶다’, ‘내 무대에 오르고 싶다’ 하는….” 최근 서울 상암동 쿠키뉴스 사무실을 찾은 무지개 멤버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연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네 남자가 무지개로 다시 데뷔한 과정에도 자초지종은 있었다. 이정욱은 2000년대 중반 흑인 음악 동호회 ‘솔리스트’에서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이현·케이윌 등 가수로 성공한 동료들과 달리, 그에겐 운이 따르지 않았다. 2014년 보컬 그룹 미오로 데뷔했지만 오래 활동하지 못했다. 당시 소속사가 아이돌 그룹 제작에 열을 올리면서 미오는 자연스레 뒤로 밀려났다. 우연히 작곡에 발을 들여 그룹 여자친구, 신화 등 인기 가수 음반에 참여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공허했다. 가수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 꿈이 미련으로 남아 자꾸만 그를 붙들었다.

그래서 이정욱은 김승열을 찾아갔다. 김승열도 솔리스트 멤버 중 한 명이었다. 10년 넘게 무대를 지키다 결국 다른 직업을 찾아 자리를 잡아가던 그의 가슴에 이정욱은 불을 질렀다. “형. 지금도 노래하고 싶죠?” 김승열이 뭐라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이정욱은 말을 이어갔다. 못다 이룬 꿈이 아직 뜨겁지 않느냐고, 자기와 보컬 그룹을 꾸려 보자고 했다. 김승열은 답했다. “네가 하자는 일인데, 내가 마다할 이유가 있겠니.” 이정욱은 당시를 떠올리며 “승열 형은 섭외 1순위 멤버였다. 형 덕분에 팀이 완성됐다”고 말했다.

무지개. 유엠아이엔터테인먼트.

또 다른 멤버 박건우도 미련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많다. 박건우는 중학생 때부터 가수가 되리라고 마음을 굳혔다. 25세에 아이돌 그룹 멤버로 데뷔했지만 3년 만에 팀이 해체됐다. 이후 뮤지컬 ‘알타보이즈’ ‘맘마미아’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 이름을 알리나 싶더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발생해 일거리가 줄었다. 활동을 접고 친형과 음식점을 열려고 준비하던 그에게 이정욱이 손을 내밀었다. 박건우는 그 때가 “드라마 같았다”고 했다. 꿈을 포기하려던 순간 조력자가 나타나서다. 이정욱은 “건우는 멤버들 중 무대 매너가 가장 좋다”며 “나이는 어려도 가장 프로페셔널한 멤버”라고 칭찬했다.

최선웅은 ‘쓰리잡러’(직업이 3개인 사람)다. 2015년 프로듀서 그룹 모해로 데뷔했고, 2018년부터 퍼스트플로어(1stfl)라는 이름으로 개인 음반도 내고 있다. 음악만으로는 돈이 벌리지 않아 개인 사업도 한다. 그는 “가슴 속에 이는 강한 끌림”을 따른다고 했다. 계획이나 계산 없이 그 때 그 때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어 발표하다가, 미국 알앤비 듀오 실크소닉에 자극을 받아 무지개에 합류했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 보이즈 투 맨을 보며 꿈을 키우던 때가 생각났어요. 열정이 불타올랐죠.” 최선웅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무지개 ‘어떻게 잘 지내니 내가 없어도’ 뮤직비디오. 유튜브 채널 무지개.

데뷔곡 ‘어떻게 잘 지내니 내가 없어도’는 이정욱이 작사·작곡·프로듀싱한 발라드 곡이다. “원래는 다른 가수에게 팔려고 만든 노래예요. 부르기 어려운 곡이라서 치열하게 작업했죠. 그래도 재밌었어요. 초심도 되살아났고요.” 가사는 우연히 옛 연인을 마주한 남자의 심정을 상상하며 썼다. 이정욱은 “누군가를 마음에서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해 미련이 남았다는 점에서 (가사 내용이) 우리가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고 했다. 녹음할 땐 ‘발라드 클리셰’를 따르면서도 노래가 올드하지 않게 부르려고 애썼다고 한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고 다시 부르는 노래. 이정욱은 “음악은 애증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가수로 활동할 땐 단 한 번도 즐겁게 노래하지 못했어요.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은 큰데, 재능은 없는 것 같고, 그래서 거꾸로 음악이 미워지기도 하고…. 지금은 달라요. 누군가를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서 그런가 봐요. 그저 즐겁기만 해요.” 음악 인생 2막을 펼치는 지금, 마음에 맺힌 미련이 풀렸느냐고 묻자 네 남자는 일제히 “이제 시작”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멤버들은 “긴 길을 돌아온 만큼, 오랫동안 팀을 지키고 싶다. 어떤 음악이든 머뭇거리지 않고 도전하겠다”면서 “2년 내에 500석 규모 공연장을 채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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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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