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게이머들을 충격에 빠뜨린 소식이 전해졌다.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가 글로벌 대형 게임업체 액티비전 블리자드(이하 블리자드)를 인수한다고 밝힌 것이다. 인수 완료 시점은 2023년이며, 인수가 완료되면 블리자드는 MS의 산하 회사가 된다.
1991년 설립된 블리자드는 전세계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게임사다.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등 다수의 명작 지식재산권(IP)를 선보이며 최고의 글로벌 게임사로 거듭난 블리자드는 전세계 모든 게임업계 종사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여러 가지 논란으로 블리자드는 과거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MS는 블리자드 인수를 위해 687억 달러(82조 9000억원)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했다. 2019년 디즈니가 713억 달러(85조원)에 폭스 스튜디오를 인수한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번 빅딜로 발생한 파장은 시장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날 블리자드의 주가는 장 초반 30%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지난 현재 시장의 반응은 다소 잠잠해진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 게이머들의 관심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대다수의 팬들은 이번 인수로 블리자드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게이머에게 사랑받는 게임사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
블리자드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는 팬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신규 아닌 신규 캐릭터… 콘텐츠 업데이트 원해요
대다수의 블리자드 팬들은 MS 인수 이후 전반적인 게임 리스트 재정비가 이뤄지길 원했다. 현재 블리자드(액티비전과 킹은 제외)가 서비스하는 주요 작품은 ‘스타크래프트1·2’, ‘워크래프트3’, ‘디아블로2·3’,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WoW)’, ‘오버워치’, ‘하스스톤’, ‘히어로즈 오브 스톤(이하 히오스)’ 등이 있다.문제는 하스스톤과 WoW를 제외한 대다수가 콘텐츠 업데이트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스타크래프트·워크래프트 등의 RTS(실시간 전략게임) 장르와 시즌제로 진행되는 디아블로 시리즈는 추가 콘텐츠가 적어도 어느 정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의견이 많지만, PvP(플레이어 대 플레이어) 형태로 진행되는 오버워치와 히오스는 오랫동안 신규 콘텐츠가 추가되지 않아 이용자들의 원성이 커졌다. 실제로 두 게임 모두 2020년 이후 신규 캐릭터가 추가되지 않고 있다.
한때 히오스 프로게이머를 지망했고, 지금도 간간히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A 씨는 “블리자드는 보석 같은 IP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서 항상 안타깝다”며 “스타, 디아, 워크, 오버워치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만 해도 수십 종인데 이들을 너무 방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히오스와 오버워치 모두 소수지만 충성도 높은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다”며 “개발진에서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이들도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버워치·히오스도 e스포츠 리그 보고 싶어요
201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블리자드는 글로벌 e스포츠를 선도하는 게임사였다. 스타크래프트 리그로 다져진 노하우를 바탕으로 하스스톤, 히오스, 오버워치 등 다양한 종목 e스포츠 리그를 진행했다. 하지만 2018년 ‘히오스 글로벌 챔피언십(이하 HCG)’이 갑작스럽게 폐지되고, ‘오버워치 리그’ 역시 운영 논란으로 인한 흥행 부진으로 과거의 명성을 잃은 상황이다. 반면 라이벌이었던 라이엇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LoL)’은 글로벌 e스포츠 무대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발돋움했다.
공식 출범 이후 현재까지 오버워치 리그를 꾸준하게 챙겨보는 B 씨는 “몇 년간의 행보를 돌아보면, 블리자드의 e스포츠 영향력 감소는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고위 경영진의 성추문 등 외적인 문제도 영향을 미쳤지만, 운영 부분의 판단 착오가 더 결정적이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8년 블리자드는 OGN이 주관하던 ‘오버워치 에이펙스 리그’를 폐지하고 자사가 직접 주관하는 오버워치 리그를 신설했지만, 중계 미숙과 매끄럽지 않은 운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지난해 블리자드 내부에서 발생한 성추문으로 인해 다수의 메인 스폰서가 발을 빼면서 큰 위기를 맞이했다.
2022년 현재도 블리자드 e스포츠의 앞날은 그다지 밝지 않은 상태다. 리그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종목 게임의 인기가 뒷받침돼야 하지만, 이용자 수는 점점 줄고 있다. 히오스의 경우 사실상 명맥만 유지되는 상황이고, 오버위치 또한 이용자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국내 PC방 점유율 순위를 보면 오버워치는 지난 18일 기준으로 신규 직업 ‘도화가’가 추가된 로스크아크에게 톱 5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B 씨는 “이제 MS라는 든든한 언덕도 생겼으니, 과거의 실수를 과감히 인정하고 잘못된 점을 고쳐나갔으면 한다”며 “리그를 운영하면서 생겼던 문제점을 개선하고, 게임 콘텐츠도 조금씩 추가되면 회생의 불씨가 조금은 커질 수도 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오버워치2-디아블로4, 기다리다 지쳤어요
“그래서 ‘소전(오버워치 2 등장 영웅)’ 다음에 나오는 건 누군데? 야, 세 명은 오다가 죽은 거야?” 블리자드의 모든 게임을 플레이했다는 지인 C 씨의 말이다.
과거 블리자드는 자사가 보유한 다양한 IP를 활용해 최소한 2년에 한 번씩은 신작 혹은 확장팩을 출시했다. 디아블로2-스타크래프트1-워크래프트3-WoW-스타크래프트2-디아블로3-오버워치로 이어지는 명작 라인업은 블라자드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블리자드가 자사 게임쇼 ‘블리즈컨’에서 신작을 공개할 때마다 게이머들은 열렬히 환호하고 박수갈채를 보냈다.
하지만 2018년 이후로는 신작 출시 주기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여러가지 위기 속에서 반전을 만들 수 있는 성장동력도 신작 부재로 인해 점점 사라지는 모양새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인 WoW와 하스스톤은 꾸준히 신규 확장팩을 공개하고 있지만, 오버워치와 히오스는 사실상 콘텐츠 업데이트가 정지된 상태다. 새롭게 출시된 신작은 워크래프트3와 디아블로2를 리마스터한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와 ‘디아블로2: 레저렉션’이 전부다. 그나마 올해는 블리자드 최초의 모바일 단독 게임 ‘디아블로 이모탈’이 출시될 예정이다.
문제는 디아블로4와 오버워치2다. 2019 블리즈컨에서 처음 공개된 두 작품은 현재까지도 베일에 싸인 상태다. 특히 두 게임의 메인 디렉터가 지난해 블리자드를 퇴사하면서 개발 일정에 더욱 차질이 생겼다. 두 사람의 퇴사 이유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황상 사내 성추문 이슈와 연관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디아블로4는 주기적으로 새로운 업데이트 영상과 패치노트가 공개되고 있지만, 오버워치2는 신규 맵과 영웅 변경 사항 외에는 이렇다 할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블리자드가 공식적으로 두 게임의 출시를 연기한다고 밝힌 만큼, 디아블로4와 오버워치2 출시는 빨라도 2023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C 씨는 “그동안 회사 내부에 이래저래 많은 이슈와 잡음이 많아서 신작 개발이 지연됐을 수도 있다”면서도 “이제는 MS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신작 개발을 독려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오버워치 영웅들과 디아블로4에 등장하는 ‘릴리트’를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오버워치2가 유지력이 있는 게임이 됐으면 한다”던 D 씨는 “오버워치 초창기 시절에 핵이나 버그 등 많은 문제가 빠르게 해결하지 못해서 게임이 망가졌다”며 “지속적인 콘텐츠 업데이트가 부족하다 보니 결국 이용자들이 떠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때 오버워치만 플레이했던 이용자로서 오버워치에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며 “꾸준히 즐길 수 있는 게임을 가지고 이용자들에게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강한결 기자 sh04kh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