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금융지주가 지난해 전체 16조원을 웃도는 순이익을 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은행업권은 현재 상황을 두고 마냥 웃을 수 없다고 토로한다. 규제산업이라는 은행업 특성 상 이익과 동반되는 청구서는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왔기 때문이다. 우선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의 금융 규제 완화 공약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어 약 140조원이 넘는 코로나 대출 상환 유예가 곧 종료될 예정이다. 이밖에 가계부채 문제와 부동산 시장 위축은 여전히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역대급 순이익’ 5대 금융지주 이익 청구서 날아오나
금융권에 따르면 2021년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농협)의 순이익은 16조8349억원으로 집계됐다. 2020년 총 순이익(12조5429억원) 보다 34.21% 증가한 것이다. KB금융, 신한금융이 4조원대 순이익을 거두었고, 하나금융, 우리·농협금융도 각각 3조원대, 2조원대 순이익을 냈다.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도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2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이러한 이익 급증에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변수를 만나면서 대출이 늘어났고, ‘땅 짚고 헤엄쳤다’라는 여론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은행권 관계자는 “시중은행이 최대 실적을 냈지만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며 “코로나로 자영업자들이나 중소상공인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은행들은 이들을 대상으로 이자장사했다는 여론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시중은행이 최대 이익을 낸 것은 가계대출 증가와 기준금리 인상으로 예대마진이 크게 늘어나서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잔액 기준 예대금리차는 2.21%p로 집계됐다. 이는 2019년 8월(2.21%p) 이후 2년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수치다.
이에 정치권은 은행이 공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이미 여야 대선 후보들의 금융 공약을 살펴보면, 저소득층과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 규제 완화에 초점을 두었다. 게다가 은행의 예대마진 제한을 위한 법안도 준비 중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자는 예대금리차 공시하는 제도를 공약으로 삼았고, 일부 국회의원도 예대마진 제한을 위한 법률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불확실성 커진 금융시장…코로나·자산시장 위축 수면 위
전문가들은 올해 금융시장은 예년과 달리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우려한다. 우선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금융부실 가능성이다. 그동안 시중은행은 코로나19라는 특수성을 발판 삼아 대출이익을 크게 늘렸다. 하지만 올해 3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코로나19 대출 상환 유예가 종료된다. 현재 국내 시중은행이 위기 대응을 위한 대손충당금을 쌓아놓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순호 연구위원은 ‘코로나19 감염병 지속 상황에서 국내 은행의 손실흡수 능력 제고를 위한 정책 방향’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상황에서는 과거부터 사용되던 예상 손실 추정 방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권고에도 국내은행의 충당금 적립 수준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총대출채권 대비 충당금 적립률은 0.41%(4대 은행 기준)로 전년대비 소폭 하락했다. 키움증권 서영수 연구원은 “국내 시중은행의 충당금 적립률은 미국 투자은행 JP모건(1.5%), 뱅크오브아메리카(1.3%), 웰스파고(1.4%) 등과 비교해 볼 때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오는 3월 140조원(5대 시중은행 기준) 규모의 ‘코로나 대출 만기 연장·상환 유예’가 만료된다. 금융당국은 향후 시장 불안정을 대비해 대규모 충당금 적립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졌다. 서영수 연구원은 “현재 0.4%인 충당금 수준을 0.8%로 높이면 4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평균 추가 비용이 1조원 내외에 달한다”고 말했다.
자산시장 위축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코로나19 이후 크게 성장했던 국내 자산시장(주식시장·부동산시장)은 최근 조금씩 위축되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지속하고 있다. 1월 국내 주식 시장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전월 대비 2.3% 감소했다. 해외 주식 거래대금은 전월 대비 9.4% 줄어들었다. 거래대금 감소는 지난 11월 이후 3개월째 감소 추세다. 지난해 11월과 비교해 볼 때 15% 줄어들었다. 이는 개인투자자들의 시장 참여가 부진해서다. 같은 기준 개인 거래대금은 전월 대비 7% 감소했다.
그동안 ‘불패신화’를 이어갔던 주택시장도 하향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아파트 거래량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고, 미분양 물량도 늘어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아파트 거래대금은 3조원 수준으로 전년동기(31조원) 대비 급감했다. 올해 1월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도 전월대비 10.5% 감소했다. 미분양 물량도 증가세다. 지난해 12월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총 1만7710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1만4094가구) 대비 25.7% 늘어난 수치로, 같은 해 9월(1만3842가구)부터 3개월 연속 증가했다.
주택시장이 주춤할 경우 금융시장도 동시에 영향을 받는다. 미분양이 늘어나면 금융사들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이 그만큼 위축된다. 이어 부동산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기업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중소기업들이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빌린 금액만 463조원(지난해 3월 기준)에 달한다. 결국 이는 은행의 부실채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2012년 전국 주택 가격이 5.6% 하락했을 당시 은행의 신규 연체 금액은 전년동기 대비 37.5% 증가했다.
외부적인 충격도 대비해야 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로 당초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금리인상과 양적긴축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발 금리인상과 긴축은 결국 국내 시장의 추가적인 기준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국내 대출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면서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커졌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