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유리(가명) 엄마처럼 일하면 안 돼?”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 아이와 가장 친한 친구 영은이가 자신의 엄마에게 한 말입니다.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영은이 엄마의 옆에 있던터라 당혹스러움에 서로를 보며 멋쩍은 미소만 지었습니다.
“일하는 엄마가 멋있어 보여? 이모보다 영은이 엄마가 훨씬 힘들고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신거야”라고 말하자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니, 엄마도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영은 엄마는 십수 년을 중견기업 회계팀에서 일하다 몸이 약한 둘째 아이 돌봄을 위해 퇴사한 케이스입니다.
워킹맘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퇴사 고민을 해봤을 것입니다. 일과 가정 양립의 어려움, 아이에 소홀하다는 죄책감, 체력적 한계 등 엄마를 주저앉히는 요인은 한둘이 아니죠. 저도 수없이 퇴사를 고민했습니다. 셋째 출산 후 육아휴직 5개월여만에 복귀를 결정했을 땐 아이가 계속 눈에 밟히는데 일에 적응까지 해아하니 어려움이 컸습니다.
시간은 흘렀습니다. 엄마들이 퇴사 시기로 꼽는 초등학교 입학 시기에도 저는 일하는 엄마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중학교 입학을 앞둔 지금까지 아이들은 한 번도 “엄마, 일 그만 두면 안돼?”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있으나 마나 한 엄마’입니다. 매일 아침이면 알아서 아이들은 준비된 반찬을 냉장고에서 꺼내 챙겨먹고 학교에 갑니다.
아이들이 초등 1학년이었을 때 교문 앞에서 기다려준 일이 거의 없습니다. 등굣길에 보호자 없이 혼자 가는 1학년은 우리 애뿐이라 안쓰러워 보인다는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고요.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학교 앞에서 기다려 본 일도 한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한참 일에 푹 빠졌을 때는 퇴근 시간 이후에도 취재원 만나는 일정을 빽빽하게 세우기도 했었습니다. 일하는 것을 가장 지지해주는 남편이 “이혼 위기”라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여러 상황이 얽혀 3개월가량 일을 쉬게 됐을 때, 막상 일을 그만두니 전업맘의 위대함과 일할 때가 제일 좋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재밌는 점은 아이들도 같은 생각이었단 것입니다. 모든 관심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쏠렸습니다. 잔소리꾼이 된 엄마 때문에 아이들은 “엄마, 대체 회사 언제 가?”라고 묻기 일쑤였습니다. 코로나 감염이 두려워 집에 갇혀 있던 막내는 제발 어린이집에 보내달라고 투덜거렸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생각한 것보다 빨리 자라있었습니다.
양가 부모, 친인척 도움 없이 아이(초등 3)를 키운 여자 선배가 전업을 고민하던 제게 “내 아이를 부부가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 부부가 함께 한다면 (일과 가정 양립) 할 수 있다”고 조언한 것도 다시 일하는데 힘이 됐습니다.
아이들은 제 직업을 좋아합니다. 어떤 직업을 가졌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자기 일을 하는게 멋있다”고 합니다. 종종 제 기사를 찾아보기도 하고 간혹 악플이 달려있으면 되레 화를 내기도 하죠.
“엄마는 언제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어?”라고 묻기도 합니다. 자신들도 엄마처럼 꿈을 찾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하는 엄마가 되려 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엄마가 필요없는 순간이 올 때마다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포기한 내 인생의 빈자리를 견뎌야 하는데 저는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얼마 전 워킹맘 기사를 위해 만난 한 취재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내가 가장 나다울 때는 내 이름 석 자로 일할 때라고 생각한다”고요.
영은 엄마는 올해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그녀가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한 건 가족의 응원이 아니었을까요.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