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크면 너무 늦습니다. 우리한테 떠넘기지 마세요. 바로 지금, 탄소배출을 훨씬 많이 줄여야 합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쬔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인도에 ‘아기 기후소송’ 청구인으로 참여한 한제아(10)양이 섰다. 정부가 법령으로 정한 온실가스 감출목표가 앞으로 가장 오랜 시간 살아가야 할 어린이들의 생명권,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헌법소원에는 태아 1명을 포함해 5살 이하 아기 30명 등 어린이 62명이 참여했다. 세계 최초로 진행되는 아기 기후 소송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회와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소속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아기 기후소송단'은 이날 헌법재판소에 지난 3월25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시행령 제3조 제1항(이하 이 사건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을 대리하는 김영희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변호사는 “이번 아기 기후소송은 부모가 아닌 아기들이 직접 헌법소원 청구인이 돼 가장 어린 세대의 관점과 입장에서 국가의 온실가스감축목표가 권리와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을 항의하고, 위헌임을 확인받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위헌이라고 보는 것은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이다. 이 시행령 3조 1항은 오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해도 미래 세대의 기본권이 침해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헌법소원 청구서를 보면, 지구 온도 상승이 1.5도로 제한될 경우, 2017년에 태어난 아기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량은 1950년에 출생한 어른이 배출할 수 있었던 양에 비해 8분의 1로 줄어든다. 어린 세대일수록 지금보다 훨씬 강력하게 탄소를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 소송단은 청구서를 통해 우리나라가 매년 약 7억톤씩 온실가스 배출해 온 추세를 고려한다면 한국의 탄소예산은 2024년(지구온도 1.5도 상승 제한 시)이면 소진한다고 주장했다.
소송단은 기후위기의 최대 피해자가 어린 미래 세대라는 점을 강조했다.
헌법소원 청구인 가운데 가장 어린, 20주 된 태아 ‘딱따구리’(태명)와 6세 아이를 둔 엄마 이동현씨는 “딸꾹질하는 태동을 느낄 때면 대견하기로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딱따구리는 이 세상에 이산화탄소를 1그램도 배출한 적이 없는데 지금의 기후 위기와 재난을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현행 NDC를 40%에서 더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5세 아이의 엄마이자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인 김예랑씨는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 40% 규정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생명권, 자유권, 행복추구권을 보호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며 “오히려 앞으로 태어날 아기들 그리고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기본권을 현저히 침해한다고 볼 수 있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는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에서의 헌법소원을 시작으로 아기 기후소송까지 총 4건의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유럽에서는 미래 세대의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 기후변화법 내 203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며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미래세대로 넘기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한편 이번 소송에는 가톨릭기후행동, 녹색당, 대안교육연대, 두레생협, 정치하는엄마들, 팔당두레생협 등 6개 시민단체가 협력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