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적게 낳자’ 역사 속으로...“셋째는 의료보험도 안 돼, 그땐 그랬지” 베이비부머 이야기 ②피임 부르는 韓사회...“하나 뿐인 우리 금쪽이” 89년생 지영씨 이야기 ③저출산 韓 집단 XX 사회...“출산율 꼴찌? 나와는 관계없어” Z세대 이야기 |
2017년 한국을 방문한 크리스틴 라가르트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저출산 한국은 집단 자살 사회”란 말이 현실로 되고 있다. 올해 1분기(1월~3월) 합계출산율은 0.86명. 역대 가장 적은 수준이다. 2015년 잠깐 반등했던 합계출산율은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우리나라 연간 합계 출산율은 2018년(0.98명), 2019년(0.92명), 2020년(0.84명), 2021년(0.81명) 4년 연속 1명을 밑도는 실정이다.
오는 2025년이면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초과한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일할 사람은 줄고 고령화는 계속되며 집단 자살 사회에 다가가고 있는 것.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00~2060년 장기 재정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30년 이후 매년 0%대 경제 성장이 예상된다.
Z세대(1996~2010년생)는 지금보다 더 아이가 줄어드는 나라, 노인이 많아지는 나라에 살게 될 당사자들이다. 하지만 많은 Z세대는 저출산 문제를 ‘나와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에코붐 세대가 부모 세대인 베이비부머에 비해 ‘한 명만 낳아 잘 기르자’란 생각이 커졌다면, Z세대는 ‘결혼해도 무자녀’라는 생각이 강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의 ‘나라경제 5월호’에 따르면 결혼하고 아이를 갖지 않는 데 동의하는 20대 비율은 2015년 29.1%에서 2020년 52.4%로 23.3%p 뛰었다.
김고은(가명·26세·여)씨는 “나와 관계없는 문제”라며 “여전히 사회는 여성에게 양육의 부담을 떠안긴다. 굳이 여성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왜 출산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유리(26세·여)씨도 “신체 구조상 아이를 낳는 것은 출산은 여성만이 가능하기 때문에 출산율 저하와 여성이 관계가 없다고 할 순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출산율이 전 세계 최하위인 문제는 당연히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거나 부담을 줘선 안 된다”고 했다.
일을 중시하고 결혼과 출산은 선택의 문제라는 생각에는 성별이 없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20년 ‘저출산 대응정책 패러다임 전환 연구(Ⅱ): 저출산 대응 담론의 재구성’에 따르면 청년층이 생애 전망에 가장 중심으로 두고 있는 것은 ‘독립’과 ‘일’이었다.
최준혁(21세)씨는 “이미 출산율은 최저이고 비혼, 무자녀를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정부가) 무슨 방법을 써도 해결이 쉽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저출산 대응을 위해 그동안 해온 현금 지원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내년 1월부터 만 0세 아동은 70만원, 만 1세 아동은 35만원의 부모급여를 매달 지급하고 내후년부터는 만 0세 아동 100만원, 만 1세 아동 50만원으로 액수를 늘린다.
이와 함께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자 육아휴직 기간은 1년에서 1년 반으로 늘리고 배우자 출산휴가기간, 초등돌봄교실·방과후 학교 시간을 연장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하지만 이같은 방식이 성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미취학 시기의 아동돌봄 정책은 무상보육의 도입 등으로 서비스에 진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낮은 돌봄의 질이 문제로 지적된다.
또 이전 정권들이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저출산 극복에 쏟아부은 예산은 2006년부터 2020년까지 380조2000억원에 달한다. 반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6만500명이다. 1970년보다 약 4분의 1,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의 절반도 못미친다.
실제 인터뷰에 참여한 5명 중 4명이 Z세대에게 “출산장려금으로 1억원을 주면 결혼, 출산을 할 수 있나”란 질문에 “필요 없다”고 답했다. 유일하게 긍정 의사를 내비친 1명도 ‘내 집을 마련했다’는 전제를 내걸었다.
물론 외벌이는 부담이다. 다만 남성들 사이에서도 일에 몰입했던 전통적 가장이 아닌 가족을 중시하는 가치관의 변화가 보인다. 혼자 가족을 부양하지 않고 부부 간의 균형을 원한다. 근무시간을 줄여 이전보다 적게 벌어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최근 육아휴직을 마친 공무원 윤정민씨는 “육아휴직을 하면 다른 동료들이 제 업무를 분담해야 하니 눈치가 보이긴 했다”면서도 “육아휴직은 제 선택이었다. 집안일도 하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장점만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윤씨는 “복귀를 앞두고 격무 부서로 배치받을까 봐 걱정됐다. 격무 부서로 가면 육아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젊은 남성들이 늘고 있지만 실제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내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김은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여성의 일을 다양한 선택지의 하나로 두고 돌봄을 전담하는 역할을 전제한 정책 방향은 전면적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다”며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아 노동생애와 저녁이 있는 삶이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토대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