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캐릭터 라푼젤처럼 주황빛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자가 낯선 남자와 사랑을 불태운다. 여름날 뜨거운 태양 아래서 둘은 입을 맞춘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남자가 이내 시름시름 앓더니 병원으로 실려 간다. 다른 남자, 또 다른 남자도 마찬가지다. 여자와 입을 맞추면 몸에 열이 올라 끝내 목숨을 잃는다. 가수 선미가 29일 오후 6시 공개하는 신곡 ‘열이 올라요’ 뮤직비디오 내용이다.
“‘보라빛 밤’의 낮 버전인 노래예요”
사랑과 죽음이 교차하는 뮤직비디오처럼, ‘열이 올라요’는 관능적이면서도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노래다. 이날 오후 서울 합정동 신한 pLay 스퀘어에서 만난 선미는 “사랑이라는 열병을 앓는 여자의 이야기”라고 신곡을 소개했다. 작곡가 김규원과 코비쿠디가 함께 만든 이 곡에서 선미는 “따가운 햇살 그 아래 우리 / 이 분위기 난 좋아요”라며 상대를 매혹한다. ‘가시나’ ‘주인공’ ‘유 캔트 싯 위드 어스’(You can't sit with us) 등 이별 노래를 주로 불러온 선미의 흔치 않은 사랑 노래다. 선미는 “여름날 밤을 표현한 ‘보라빛 밤’의 낮 버전 노래”라고 설명했다. 신곡이 공개되는 29일은 2년 전 ‘보라빛 밤’이 발매된 날이기도 하다. 선미는 “두 곡에 연관성이 있다고 느껴서 공개일을 맞췄다”고 귀띔했다.
“그 어느 때보다 홀가분해요”
‘6분의1’ 음반 이후 10개월여 만에 내는 신곡. 선미는 “그 어느 때보다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노래와 콘셉트를 이전보다 가볍고 싱그럽게 꾸민 데다, 활동을 앞둔 마음도 한결 가볍다고 했다. 선미는 “데뷔 16년차에 솔로 가수로 활동한 지도 10년이 됐다. 그동안 ‘이번 음반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거창하게 답해야 할 것 같아 부담이었다”면서 “그러다 문득 ‘활동을 짧게 할 것도 아닌데 (꿈이) 거창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마음도 홀가분해졌다”고 돌아봤다. 한때 독보적인 아이콘이 되고 싶다고 했던 중견 아이돌의 꿈은 어느새 소박해졌다. 선미는 “많은 분들이 ‘선미 신곡 나왔네’라며 내 노래를 한 번 들어주시는 것만큼 거창한 바람이 없는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더 멀리, 더 오래 달릴게요”
15년 전 선미가 그룹 원더걸스 멤버로 데뷔했을 때만 해도, 그가 지금 같은 모습으로 성장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데뷔 초 엉뚱한 성격과 예쁜 외모로 인기를 끌었던 선미는 다양한 콘셉트를 아우르는 퍼포머이자 작사·작곡과 프로듀싱을 스스로 하는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났다. 그는 “5년 전에는 ‘나도 2~3년이면 끝이겠지’라고 생각했다. 여자 가수들의 수명이 짧았기 때문”이라면서 “그런데 지금은 나이가 중요하지 않은 시대다.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선미는 이제 자신의 마지막을 쉽게 점치지 않는다. 한계를 정해두지도 않는다. 그는 “지금까지 버텨낸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며 “100m 달리기 선수가 아니라 마나토너의 마음가짐을 갖고 더 멀리 더 오래 달릴 예정”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