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방학 때 뭐 할 거예요?”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립니다. 평소 회사와 집이 아니고는 전화가 올 곳도 없었는데 요즘은 또래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의 연락이 잦습니다. 여름방학 준비 때문입니다.
약 40일간 아이들의 즐겁고 알찬 방학을 위해 엄마들은 분주한 모습입니다. 공부에 지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즐거운 여름방학이지만, 부모 입장에선 마냥 웃음이 나진 않습니다.
지난 2016년 영어교육 전문기업인 윤선생의 발표에 따르면 초등생 이상 자녀를 둔 546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자녀의 방학으로 스트레스를 받느냐는 질문에 전업맘은 71.4%, 워킹맘은 79.5%가 ‘그렇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실제 신경 쓸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특히 아이만 혼자 두고 집을 나서야 하는 워킹맘의 고민이 큽니다. 학교 돌봄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마저 초등 1~2학년이 주로 대상인데다 탈락자들에겐 그림의 떡입니다.
초등 3학년 자녀를 맡길 곳이 없는 워킹맘 이정은(36)씨는 “아이가 다니는 공부방 선생님에 오전 수업을 해줄 수 없는지 부탁하고 태권도 오전 특강도 신청했다”며 “우리 가족 잘 먹고 잘살자고 일하는 것인데 애들을 내모는 것 같아 심란하다”고 말했습니다.
전업맘도 힘들긴 마찬가지입니다. 온종일 아이들과 집에 있으면 아이도, 엄마도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기 마련이죠. 그래서 아이들과 집보단 밖으로 나갑니다. 이 무더위에 밖으로 나가는 것이 고행일지라도요.
지자체, 도서관, 청소년 수련관 등 각종 기관의 방학 프로그램과 박물관, 미술관 등 체험 행사는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입니다. 체험비가 없거나 저렴하기 때문이죠. 방학동안 1365 자원봉사 포털을 통해 봉사활동에 나서는 경우도 많습니다. 얼마나 신청자가 많은지 프로그램 신청이 열리는 날이면 순식간에 마감되기 일쑤. 엄마들 사이에선 PC방 원정에 나섰던 대학 수강신청 때보다 성공하기 어렵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옵니다.
방학을 둘러싼 고민거리 중 하이라이트는 아이들의 끼니 문제입니다. 고등학생 1명과 중학생 2명의 자녀를 둔 전업맘 조은경(46)씨는 “지옥문이 열렸다”고 표현했습니다. 삼시세끼 ‘돌밥돌밥(돌아서면 밥하고 돌아서면 밥하고)’ ‘돌간돌간(돌아서면 간식 챙기고)’의 시기가 왔기 때문이죠.
워킹맘은 아이가 점심을 제대로 챙겨 먹을지 걱정입니다. 아이가 저학년이라면 스스로 밥을 차려먹기 어려워 걱정이고, 고학년 이상인 아이는 잠깐 데워먹기만 하면 되는 냉장·냉동·레토르트 식품마저 스스로 잘 챙겨 먹질 않아 속이 터진다고 엄마들은 입을 모읍니다. “밥 먹어라”는 전화를 하다보면 피로가 두 세배로 쌓이는 느낌이라고 말입니다.
워킹맘 배지수(39)씨는 지난주부터 방학으로 집에 있는 혼자 있는 아이를 위해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놓고 출근합니다. 반찬이 냉장고에 있어도 아이가 제대로 꺼내 챙겨먹질 않아 나온 고육지책이라고 합니다. 배씨는 “출근 준비로 정신이 없어 일주일 내내 아이에게 볶음밥 도시락만 싸주고 나왔는데 안쓰럽고 미안하다. 남은 한 달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치솟는 외식비, 3000~4000원 상당의 배달비는 부담이지만 아이의 끼니를 대신할 수 있다면 아깝지 않는게 부모의 마음인가봅니다. 점심때마다 배달 음식을 시켜주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집 근처 음식점이나 도시락 가게에 미리 방학 동안 아이가 먹을 점심값을 결제해두기도 하고요. 배달라이더 A씨는 “지난 방학 때 점심때마다 매일 김밥 배달을 갔던 집이 있었다. 배달하고 갈 때 보니 아이가 음식을 가지고 들어가더라”고 했습니다.
아이의 점심 식사를 해결해주는 학원들은 엄마들의 빛 같은 존재입니다. 이씨는 “도시락만 싸서 보내면 태권도 학원에서 점심을 먹게 해준다”며 “점심을 먹여주는 것도 고마운데 방역수칙도 철저하게 지키면서 먹인다고 해 너무 감사했다”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방학이 알차고 즐거울 수 있는 건 이와 같이 부모의 많은 고민과 노력이 숨어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