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애들 방학도 했으니 8월초에 가족 여행가려고”
친구 “야, 제일 비쌀 때인데 왜 그때 가?”
기자 “…”
전통적인 극성수기인 7월말~8월초.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리고 항공료, 숙박비, 렌트비 등이 가장 비싼 시기입니다. 공교롭게도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학원 등이 여름 방학에 들어가는 시즌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 늦어도 방학이 끝나기 전인 8월 중 많은 가정이 바캉스를 떠납니다.
엄마들 사이에선 아이들과 하는 여름휴가가 즐겁긴 하지만 고행이란 말도 나옵니다. 그만큼 고되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남들 다 가는 휴가를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방학이 끝나면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방학 때 뭐 했는지 이야기할텐데 내 아이만 할 말이 없다면 아이에게 미운털이 콕 박힐테니 말이죠.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 방학이 제각각인데다 남편의 일정도 맞춰야 하니 휴가 일정을 잡는 것부터 지칩니다. 여행지와 숙소를 고르기 시작하면서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집니다. 가뜩이나 비싼 성수기에 여행 갈 수밖에 없는 상황도 화딱지가 나는데 숙박비는 너무 비쌉니다.
아이가 셋인 기자는 특히 숙소를 구하기 힘듭니다. 5인 이상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있는 호텔은 찾기도 힘들고 찾는다 해도 가격이 굉장히 비쌉니다. 차라리 작은 방 2개를 예약하는 게 나을 정도죠. 비교적 다자녀 가정이 묵기 좋은 리조트는 예약하기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고, 펜션은 5명까지 받아주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보통 방 1개 2인 기준으로 추가 인원 비용을 얹어야 해 부담도 크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가야 합니다. 아이들이 기대하고 있는 여름방학이니까요.
준비물도 많습니다. 아이들 수영복부터 튜브 등 물놀이용품, 비상약, 먹을거리도 챙겨야죠. 주판알을 튕기다가도 1년에 한 번 큰마음 먹고 가는 여름휴가인 만큼 돌연 지름신이 내린 양 지갑을 열 가능성이 큽니다. 최근 물가가 너무 올라 허리띠를 졸라 매던 엄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겠죠.
여름휴가를 떠나면 누군가는 가족의 삼시세끼와 간식을 챙겨야 합니다. 여행 분위기에 취했다는 핑계로, 여행지에서 만큼은 밥을 하고 싶지 않겠다는 의지로 외식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마저도 편한 건 아닙니다. 어린아이가 있다면 식당에서 아이 밥을 먹이느라 정작 엄마는 마음 편히 밥 한 그릇 먹기 쉽지 않습니다.
여행에 많은 돈을 투자하면 엄마의 바캉스는 편해질까요? 휴가를 뜻하는 바캉스는 ‘비어 있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란 뜻의 라틴어 바카티오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돈은 돈대로 써도 자유를 얻긴 어렵습니다.
수영장이나 바다에서 혹시 아이들이 물에 빠지거나 다치지는 않을까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부부 중 한 사람은 물속에서, 또 다른 사람은 물 밖에서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자리를 지킵니다. 아이들처럼 마음 편히 물놀이를 즐기긴 어렵죠.
물놀이가 끝나도 문제입니다. 바다, 계곡 주변에는 열악한 샤워시설이 많다보니 아이들을 씻기기 쉽지 않습니다. 실컷 놀고나면 배고픔과 피곤함에 칭얼대는 아이를 케어하고, 간식거리를 챙겨 먹여야 합니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상황은 더 곤란해집니다.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 엄마 껌딱지가 되는 아이를 챙겨 문을 연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장소만 달라졌을 뿐 육아 전쟁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여행에서 밀린 빨래와 모든 짐 정리가 끝나야 마침내 휴가가 끝이 납니다.
이 글이 누군가의 아내 또는 엄마가 이번 여름휴가에서 가족과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비싼 시즌에 가족과의 추억을 위해 여행을 떠난 엄마의 여름 휴가도 즐겁길 바라면서.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