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처럼 뜨거웠다, BTS 제이홉 美 롤라팔루자 공연

불길처럼 뜨거웠다, BTS 제이홉 美 롤라팔루자 공연

기사승인 2022-08-01 16:14:36
미국 음악 페스티벌 롤라팔루자에서 공연 중인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제이홉. AP 연합뉴스

1일(한국시간) 땅거미 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그랜트 공원. 무대에 마련된 장난감 상자에서 한 사내가 튀어 오른다. “데이 콜 미 홉”(They call me hope·그들은 날 희망이라 불러) 반항적인 눈빛으로 심장을 토해내듯 랩을 하는 사내는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제이홉. 그는 이날 열린 미국 최대 규모 음악 페스티벌 롤라팔루자에서 한국인 가수 최초로 메인 무대 간판출연자로 공연을 꾸몄다.

지난달 15일 솔로 음반 ‘잭 인 더 박스’(Jack in the box) 수록곡을 처음 라이브로 들려주는 자리였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로 공연을 연 제이홉은 음반 더블 타이틀곡인 ‘모어’(MORE)와 ‘방화’(Arson)을 비롯해 ‘판도라스 박스’(Pandora’s box), ‘=’, ‘스탑’(Stop), ‘왓 이프’(What If) 등 대부분 신곡으로 공연을 채웠다. 방탄소년단의 메가 히트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는 기존과 다른 안무로 선보여 환호 받았다.

“왓츠 업? 롤라팔루자”(What's up? Lollapalooza·롤라팔루자, 잘 지냈나요?) 관객을 향해 이렇게 외치는 제이홉에게서 긴장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여유가 넘쳤다. 첫 곡으로 ‘모어’를 부르고 난 뒤 관객들에게 “더 원하나요?”라고 물으며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일 정도였다. 지난 4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공연 이후 4개월여 만에 대면한 관객이 반가워서였을까. 그는 귀에 꽂은 모니터링 이어폰을 빼고 팬들의 함성을 만끽했다.

바르고 고운 말이 더 익숙했던 청춘스타는 무대에서 과감하고 거칠었다.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팬들을 보며 “유 가이즈 아 퍼X 크레이지”(You guys are fuxxxx crazy·너희 정말 멋있어)라고 속어 섞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는 “내 심장과 영혼을 음악에 쏟았다”며 “언어는 달라도 내 이야기를 잘 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무대 뒤에선 제이홉이 쓴 가사가 영어로 번역돼 흘러나왔고, 무대 아래 한켠에선 모히칸 스타일을 한 수어통역사가 손으로 노랫말을 그렸다.

제이홉. AP 연합뉴스

제이홉은 자신 안의 불꽃을 땔감 삼아 쉬지 않고 달렸다. 관객들도 즉시 감응해 함성과 ‘떼창’을 내질렀다. 미국은 물론 한국, 브라질, 멕시코 등 세계 각국의 팬들이 그랜트 공원으로 몰려들었다. 페스티벌 진행자인 한나 라드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오후 9시 시작된 제이홉 공연을 보기 위해 이날 오전 5시부터 팬들이 몰려들었다. 팬들은 주최 측과 인터뷰에서 “제이홉의 음악과 열정이 날 살렸다” “제이홉은 언제나 우리의 햇살이자 희망”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공연 말미에는 라틴 음악계의 떠오르는 신성 베키 지가 깜짝 등장해 제이홉과 함께 ‘치킨 누들 수프’(Chiken Noodle Soup)를 불렀다. 두 사람이 한 무대에 서는 것은 2019년 이 곡 발매 이후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애초 온라인에선 같은 그룹 동료인 지민이 롤라팔루자 무대에 오르리라는 예측도 나왔지만 둘의 합동 공연은 성사되지 않았다. 다만 지민은 소속사 하이브를 이끄는 방시혁 프로듀서 등과 함께 현장에서 제이홉의 공연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제이홉은 공연 말미 한국어로 “솔로 음반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내게 피와 땀이 됐다. 오늘 롤라팔루자에서 공연하며 또 한 번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기쁨에 벅찬 듯 잠시 말문을 잇지 못하던 그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은) 두려움의 연속이었지만, 뜻깊은 순간이 됐다. 낯간지럽지만 이 순간을 이겨낸 제가 자랑스럽다”고도 했다. 그는 전날 미국 롤링스톤과 인터뷰에서 “이번 공연이 아티스트로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줄 거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미국 연예매체 업록스에 따르면 제이홉은 롤라팔루자에 다녀간 역대 아티스트 가운데 가장 많은 티켓 판매 기록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제이홉이 출연한 날짜 모든 티켓은 지난달 초 일찌감치 매진됐다. 사미르 마예카르(Samir Mayekar) 시카고 경제 및 지역 개발 부시장은 전날 공연장 일대 카페를 가득 채운 아미(방탄소년단 팬덤) 사진을 SNS에 올리며 “시카고 경제에 미치는 제이홉 효과”(The j-hope effect on our Chicago economy)라고 적기도 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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