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부터 이어진 폭우는 반지하 등 주거 취약계층에게 더 가혹했다. 이번 폭우로 서울에서 숨진 사람들만 8명, 이 중 절반이 반지하 주택 주민이다. 서울시는 황급히 지하·반지하 주택에 사람이 거주할 수 없도록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다. 집값 부담에 반지하 주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안심시킬만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주거 대안은 부재한 채 성급하게 발표했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는 ‘반지하 거주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지난 10일 내놨다.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지하·반지하는 주거 용도로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몰제를 두고 이미 허가받은 지하·반지하 주택도 10~20년 유예기간에 순차적으로 없애는 방법도 추진한다.
현재 거주 중인 세입자가 나간 뒤에는 더 이상 주거용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비주거용 용도 전환을 유도하고, 건축주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마련키로 했다.
여름철마다 지하·반지하 침수 문제는 반복돼 왔다. 정부·지자체 등이 주거 취약계층를 위해 내놓은 대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울시는 지난 2010년에도 태풍 곤파스로 인해 반지하 주택의 침수 피해가 잇따르자 침수 피해가 많은 저지대에는 반지하 주택 신축을 불허가낼 수 있도록 건축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반지하 주택 4만호 이상이 건설됐다. 건축 자체를 법이 강제하지 않은데다 지하·반지하 주택은 사회구조적 요인이 얽혀 현실적으로 퇴출하기 어려웠다.
일각에선 서울시가 이번 대책을 통해 기존 세입자를 대상으로 내놓은 대안을 두고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는 기존 세입자들에게 공동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주거 상향 사업을 시행 중이라면서 모아주택 등 정비사업과 함께 공공임대주택, 주거바우처를 언급했다.
서울 시내의 지하·반지하 가구는 2020년 기준으로 전체 398만2290가구 중 20만849가구(5%)에 달한다.
윤석열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예정 공급량은 전임 정부의 연평균 14만 가구에 못 미치는 10만 가구에 불과하다. 또한 현재 서울 내 공공임대주택은 24만호 안팎이다. 실제 지난해 서울에서 주거 상향사업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한(1669가구) 반지하 가구는 247가구(14.8%)뿐이다. 뾰족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반지하가 퇴출된다면 이곳에 살던 거주자들은 도시 난민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또한 서울시 주택바우처는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지 않는 중위소득 60% 이하인 가구에 월세를 지원하는 방식인데, 가구 수에 따라 월 8만∼10만5000원을 지원한다. 이를 두고 바우처로는 수도권의 높은 주거비를 감당하긴 역부족이란 비판이 나온다. 지하·반지하주택 가구가 지정 특정바우처 대상에 지정돼 추가금액을 지원받는데도 월 12만원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장기적으로 지하·반지하 주택을 없애는 정책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거주자들의 주거 불안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 손안에 서울’에 11일 공개된 ‘수해복구에 재난기금 긴급 투입 …반지하 안전대책 마련’의 댓글만 살펴봐도 해당 대책에 대한 불만이 쏟아진다.
누리꾼 A씨는 “지하·반지하에 살고 싶어 사는 사람이 있나. 해 잘드는 지상층에서 살 수 없는 형편이라 지하·반지하를 사는 것인데 그 비용을 정부가 어떻게 해결해준다는 것이냐”고 따졌다.
반지하 주택의 집주인이라고 밝힌 누리꾼 B씨는 “반지하를 없애야 한다면 미리 대책을 세운 다음 발표를 해야 한다. 그나마도 거래가 미미한 지하 빌라의 매매가 완전히 중단되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도 “누군 반지하 들어가고 싶어 들어갔을까. 햇빛값을 못내서 들어간 것” “반지하 없어지면 옥탑방 가야 한다” “반지하라고 전부 지대가 낮고 침수되는 게 아니다” 등 반응이 잇따랐다.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와 주거권네트워크는 논평을 통해 “장기적으로 지하·반지하 주택을 비주거용으로 전환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꼭 필요한 일”이라며 “현재 지하·반지하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의 대체주택 공급과 지하·반지하 주택에서 지상의 주택으로 이주하는 것이 과도하게 부담이 되는 가구에 대한 주거비 보조 등이 전제가 되지 않는다면 서울시의 대책은 공허한 외침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