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는 게 값” 의료폐기물에 병원들 골머리

“부르는 게 값” 의료폐기물에 병원들 골머리

진단키트, 장갑…코로나19로 늘어난 의료폐기물
병원들 “처리비용 인상에 부담”
소각장 전국 13곳뿐…최대 280km 이동하기도
전문가 “규제 유연화 필요”

기사승인 2022-09-03 06:23:02
지난 3월 서울 은평구 서북병원에서 관계자들이 의료폐기물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 ”폐기물 수거업체가 매년 가격 인상을 ‘통보’ 합니다. 코로나 이전에 비하면 kg 당 처리 단가가 거의 2배 뛴 것 같아요. 가격 인상에 반발하면 폐기물을 안 가져가요. 의료폐기물 처리 기준이 엄격해서 원내에 쌓아두면 위법인데 이걸 노리는 거죠.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3년째를 맞았다. 의료폐기물은 증가하는데 소각장은 부족한 실정이다. 일선 병원들은 폐기물 처리 비용 증가에 대한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의료폐기물은 보건·의료기관, 동물병원, 시험·검사기관 등에서 배출되는 폐기물 중 인체에 위해를 줄 우려가 있는 폐기물과 보건·환경 상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폐기물을 말한다. 감염 위험이 있어 처리 과정이 까다롭다. 의료폐기물은 전용용기로 배출, 밀폐 상태로 보관하다가 처리업체가 전용 차량으로 수집, 운반한다. 이후 전용 소각시설(또는 멸균시설)에서 처분한다. 

의료폐기물은 3종류로 나뉜다. △격리의료폐기물(감염병으로부터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격리된 사람을 돌보느라 발생한 일체의 폐기물) △위해의료폐기물(인체 조직, 장기, 기관, 혈액 및 고름, 주사바늘, 수술용 칼날 등)△일반의료폐기물(혈액·채액·분비물이 묻은 탈지면, 붕대, 거즈, 일회용 주사기)다.
국회입법조사처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관련 의료폐기물은 지난해 1~8월까지 월평균 1560톤이 발생했다. 7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8배가 넘는 1939톤, 8월에는 전년 대비 9.8배에 가까운 2929톤에 달했다. 고령화, 실버산업 발달 영향으로 의료폐기물은 앞으로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병원 관계자들은 의료폐기물 처리 비용이 높고 지역마다 단가가 천차만별이라며 토로하고 있다. 서울에서 원스톱진료기관(코로나19 검사·진료·처방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을 운영 중인 A 병원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코로나19 환자 치료 과정에서 의료진이 입는 헤어캡, 안면 쉴드, 장갑을 비롯해 각종 주사제, 환자가 썼던 일회용 식판, 속옷 모두가 다 폐기물이다. 한 달에 폐기물 처리 비용만 수백만원”이라며 “이달 벌어 다음 달 사는 형편이다. 경영난으로 직원도 줄여야 할 판인데 (수거업체에서) 매년 처리단가를 인상하니 부담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충남에서 원스톱진료기관을 운영 중인 B 병원장은 “처리단가가 코로나19 전의 두 배 수준”이라면서 “폐기물 부피와 처리단가가 동반 상승했다. 이전에는 수거업체에 처리비용을 매달 지급했는데 지금은 3~5개월어치가 밀려있는 상태”라고 털어놨다. 
국회입법조사처

지난 2019년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1톤당 69만4000원이던 의료폐기물 처리비용은 △2017년 76만8000원 △2018년 83만8000원 △ 2019년 100만4000원으로 증가했다.

폐기물 처리단가가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의료폐기물 소각시설은 전국에 13개소가 전부다. 일부 지역에 편중돼 있어 의료폐기물을 처리하려 최대 280km 떨어진 소각시설까지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또 의료계 안팎에서는 소각 업체끼리 서로의 거래 병원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암묵적으로 합의하거나 처리 비용을 인상하는 가격 담합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한국의료폐기물공제조합 관계자는 “폐기물 처리 비용이 비싸고 부담스럽다는 것 자체에 동의하기 힘들다”면서도 “요새 기름값이 30~40% 가까이 올랐다. 폐기물을 수집, 트럭으로 장거리 운반하다 보니 유료비와 인건비 상승이 반영됐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대안은 크게 두 가지다. 의료폐기물 소각시설 수를 늘리거나, 병원내 의료폐기물을 일반폐기물로 바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멸균분쇄기’를 설치하는 방법이다. 의료폐기물 처리시설은 혐오시설이라는 낙인이 찍혀 증설이 어렵다. 병원 내 자가 멸균시설 운영도 장애물이 많다.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에는 ‘의료폐기물 배출자가 설치하는 멸균분쇄시설 처분능력은 시간당 100kg 이상 시설’ 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당 100kg이상의 멸균분쇄기는 크기도 크고 구입에만 억대의 비용이 든다. 업계에서는 과도한 기술 통제로 일부 대형병원을 제외하고는 병원들이 멸균분쇄시설을 설치하지 못한다며 반발이 크다.

전문가는 현 폐기물 시장이 과도하게 경직돼 있다고 봤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 소장은 “의료폐기물은 의료폐기물 전용 소각장에만 갈 수 있고, 소각장은 부족하다. 소각장을 더 짓기는 어려우니 멸균분쇄기 설치 요건을 완화하는 등 시장을 활성화 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멸균분쇄기가 많이 개발되고 운영 사례가 늘어나면 가격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본다”며 “고령화를 맞아 앞으로 의료폐기물 문제는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 전에 시장을 유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정부가 다각도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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