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 펠로십’ 만든다는데…과학계 지원 실태는

‘허준이 펠로십’ 만든다는데…과학계 지원 실태는

기사승인 2022-10-06 06:00:19
정부가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겸 한국고등과학원 수학부 석학교수(39) 이름을 딴 프로그램(펠로십)을 만든다. 허 교수처럼 우수한 수학자를 많이 배출하겠다는 의지다. 청년 수학 인재에게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마련해주는 게 핵심이다. 허 교수를 5년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미국 ‘클레이재단’을 모델로 삼는다.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



투자는 많이 하는데

지난 3일부터 노벨상 올해 수상자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노벨상 제정 이래 과학 분야 수상자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한국은 산업화 이래로 기초기술보다 빠른 압축 성장을 위한 패스트팔로어 전략에 집중했고, 그 결과 전자·조선·자동차산업은 크게 발달했지만 기초과학 연구 수준은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에 머물러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연구개발(R&D) 투자를 게을리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앞선다.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R&D 예산은 2011년 14조8000억원에서 2020년 24조2000억원으로 약 10조원 불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활동조사’를 보면 투자주체별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비율은 2020년 기준 4.8%로 미국(3.5%)이나 일본(3.3%), 독일(3.1%)보다도 높다. 절대적 투자규모는 그러나 선진국 대비 작다. 지난해엔 역대 최대인 26조5791억 원이 집행됐다. 이중 기초연구 비중은 5조3068억원(27.5%)이다.
정부연구개발 예산추이

연구 지원도 실적도 높은 편이다. 정부기관인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현재까지 지원 건수는 약 4만건, 시료수는 26만건 이상이다.

국제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비용 등 노력 대비 한국이 노벨상에 다다르지 못한 이유를 5가지로 기술한 바 있다. 상명하복 문화와 산업계 중심 R&D투자, 시류에 편승한 주먹구구식 대응, 인재 유출, 논문 부족이 그것이다. 

기초과학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인재를 많이 육성해야 하는데 청년들 인식은 달랐다. 자신을 고학번이라고 소개한 한 서울대생은 “막상 입학하고 나면 뭘 공부해야 할지 모르는 동기들이 많다. 자연대가 학점 받기도 어렵다”며 “이 분야가 비전이 없다”고 토로했다.


“장기적인 연구 환경 필요”

지난 7월 필즈상을 수상한 허 교수는 “단기 목적으로 연구하지 않고 즐겁게 장기적인 큰 프로젝트를 할 만한 여유롭고 안정적인 환경을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전문가도 단기 성과보다 긴 호흡에서 연구가 진행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함을 시사했다.

기초과학연구원 관계자는 “기초과학연구라는 게 성과가 나오고 빛을 보려면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하다”라며 “노벨상도 연구 결과가 나오고 한참 후에 수상하듯이 장기적으로 집중해서 연구를 하다보면 수상 가능성도 높아질 거라고 생각 한다”고 밝혔다.

양승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원장도 신규성과 범용성을 충족하는 연구를 지속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강조했다. 

양 부원장은 “연구자들이 정년을 맞았을 때 석좌교수로 임용되기도 하지만 현직 교수가 아닌 이상 랩을 꾸려서 연구를 계속할 환경은 미진하다”라며 “차별화한 연구, 신규성과 범용성을 만족해야만 독자성을 띄고 노벨상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노벨상 수상자 평균 연령은 61세, 핵심 연구 성과 산출까지 19년이 소요됐다. 

양 부원장은 “노벨상 시즌만 오면 왜 우리나라에서는 수상자가 없느냐고 하는데, 당장 성과보다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할 환경을 조성할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집중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며 “실제 혁혁한 성과 중 상당수는 대형 프로젝트가 아니라 연구비를 조금 받더라도 지속적으로 진행한 케이스에서 나온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어 “가장 중요한 건 지속성과 안정성을 어떻게 담보할지도 정부가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준이 펠로십’은 만 39세 이하 한국 국적 청년 수학자가 국내외 소속 기관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최소한 조건을 설정, 장기 연구를 지원하는 게 목표다. 초기 5년에 더해 연구 성과가 있다고 판단되면 최대 10년간 지원하는 방안도 논의된다. ‘허준이 펠로십’을 계기로 국내 과학계 지원이 더 활발해질지 주목된다.

한편 지난해 확정된 ‘2022년도 국가연구개발 투자방향 및 기준(안)’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회복·도약·포용 등 국정방향에 맞춰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중 포용 바탕 미래 혁신역량 강화를 위해 창의‧도전적 기초‧기반 연구, 인재 양성, 지역‧중소기업 역량 강화 및 창업‧기술사업화를 중점 지원하기로 했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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