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치고받아도 예전엔 ‘대화’란 게 있었지”
대선 정국부터 시작된 1년 여 넘게 계속되는 정치권 공방에 정치를 향한 국민의 피로도가 극에 달하고 있다. 대폭적인 ‘협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일치하는 부분에 대해서라도 서로 합의하고 ‘양보’하는 미덕을 보일만도 한데 그런 기미조차 없다.
여야는 최근 이례적으로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정치 공방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여야 각 당의 정치적인 지향점이 다르기에 정책에서는 극렬한 대립이 있을 수는 있지만, 지금처럼 상대방을 향한 무조건인 비판과 공세로 일관하는 모습은 드물다.
여야를 불문하고 십여 년 넘게 정치권에 적을 두고 있는 다수 정치권 관계자들은 여야 사이 대화와 소통 없는 지금의 모습이 꽤 이례적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아울러 꽉 막힌 정국에 답답함도 호소했다.
20여 년 가까이 여의도에서 활동한 여권 관계자는 26일 쿠키뉴스와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겉으로는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물밑으로는 여야 지도부가 자주 만나 의견교환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이 전혀 안 보인다”며 “당 내부에서도 결국 국정운영의 책임은 집권여당이 진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누군가 나서서 사태를 수습할 분위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국정의 책임은 결국 집권여당이 지는 것인데 소통의 여지를 주지 않는 모습에 답답하다고 밝혔다. 익명의 야권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여야가 안 싸운 적은 없지만 대화의 창구는 만들어두고 싸웠던 걸로 기억한다”며 “때로는 밀기도 밀리기도 하면서 어떠한 형태로든 정치라는 굴레가 돌아갔는데 지금은 그야말로 멈춰서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국정 운영의 책임은 집권여당이 지는 것인데 아직도 본인들이 야당이라고 착각하는 건지 풀어나갈 의지가 안 보인다”면서 “야당에 대한 공세보다는 경제위기 대응에 고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정국이 경색됐을 때는 중진의원이든 청와대 정무·홍보라인이든 그 누군가가 중재자로 나서 갈등을 풀었다.
실제 지난 2013년 말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 도입을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5선 이상 여야 중진의원들이 직접 나서 복잡한 정국을 풀었다. 국회 의원회관 지하 목욕탕을 애용하는 여야 의원들의 친목 모임 일명 ‘목욕당(沐浴黨)’ 회동을 통해 서로의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원만한 국정운영과 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을 펼쳤다.
오랜 정치 경력을 쌓은 선배 정치인들은 꽉 막힌 정국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결단이 절실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야권 성향의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북한은 매일 도발하고 광화문과 여의도에서는 보수·진보가 나뉘어 ‘너 죽고 나 살자’식으로 싸우고 있다. 또 세계 경제는 나락에 빠지고 있어 정치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 시기”라며 “이럴 때일수록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 현안을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전 원장은 “이재명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 내외와 관련된 문제는 제외한 채 특검을 하자고 주장하는 만큼 이재명 수사는 특검에 넘기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대북 문제부터 경제·외교 문제 등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30년 넘게 청와대와 국회 등을 오가면서 활동한 익명의 정치권 관계자는 26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최근 상황에 대해 “이전 정권(문재인 정부)에서 2명의 전직 대통령과 4명의 국정원장을 포함해 수많은 반대 진영 인사들을 감옥에 보내다 보니 좋지 않은 감정이 쌓였을 것”이라며 “이러한 정치보복의 역사는 비단 몇몇 정권뿐 아니라 그간 한국 정치사에 꾸준히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치보복이 한국 정치의 암묵적인 관행이라고 하더라도 국회 예산안 통과 등 야당의 협조가 필요할 때도 있는 만큼 대통령이 결단해 야당과 직접 대화하려는 모습이 필요하다”며 “야당 지도부를 대통령실에 초청해서 만찬을 한다든가 꼭 통과해야 할 법안에 대해서는 상임위별로 초청해 대화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유연한 대처와 자세가 정부 국정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