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금융위원장은 1일 레고랜드 사태發 자금시장 경색 문제를 두고 시장의 거래가 과도하게 위축된 부분을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2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조성과 관련한 대형 증권사들의 반발에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시장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5대 금융지주 시장안정화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을 만나 자금시장 경색 문제를 풀기 위한 유동성 공급 정책이 글로벌 긴축정책과 배치된다는 지적에 “급격히 유동성을 줄이면 더 큰 위기로 번질 수 있는 만큼, 필요한 조치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 시장 안정조치의 기본적인 특징은 시장의 불안심리로 인해 과도하게 거래가 위축되는 상황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정상 기업조차 자금 융통이 안 돼 유동성 문제나 신용 위험이 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에는 회사채와 대출이 있는데 회사채의 경우 금리가 오르고 조달이 어렵다보니 은행 대출로 전환되는 부분이 있다”며 “최근 금리를 보더라도 짧은 기간 내 이렇게 급격하게 오른 경우가 없고 환율도 마찬가지인데 기본적으로 이렇게 모든 게 급격하게 변하면 힘들다”고 부연했다.
그는 “기업 입장에서도 조정하는데 어려울 수 밖에 없고 급격히 유동성을 줄이면 굉장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5대 금융지주가 건전성도 좋고 유동성의 공급 능력도 좋아 여러 경제 주체 중 가장 안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 유동성이 너무 급격하게 위축이 안 되도록 계속해서 협의를 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이같은 취지에서 이날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을 만나 자금시장 유동성 공급 방안을 마련했다. 당국의 요청에 따라 KB·신한·우리·하나·NH농협금융 등 국내 5대 금융지주는 올해 연말까지 95조원 규모의 자금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5대 금융지주 유동성 공급이 73조원, 채안펀드 및 증안펀드 12조원, 지주 그룹 내 계열사 자금 공급이 10조원 등 이다.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은 이와 관련해 “고금리 상황과 위험 회피 성향에 따라 은행권으로 집중되는 자금이 대출과 자금 공급 등을 통해 실물 경제와 금융 시장에 다시 순환되도록 은행 본연의 역할을 강화하고 취약 계층 지원 등 사회적으로 은행권이 기대하는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제2 채안펀드 조성과 관련한 대형 증권사들의 반발에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대형 증권사들은 당국이 요청한 3조원 규모의 제2 채안펀드 조성에 시장 왜곡, 배임 가능성을 근거로 동참을 거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모든 걸 해결하는 건 옳지 않다”며 “정부의 재원은 더 어려운 분한테 쓸 수 있고, 여러분을 위해서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민간에서 해결하는 게 맞다. 정부도 한국증권금융과 한은을 통해서 지원하고 있다”며 “증권사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그러한 요구가 부당하다고 한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당국이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자금시장 문제 해결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국내 기업들의 자금상황이 악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보유한 대출금액이 올해 상반기 기준 1321조3000억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보다 345조3000억원 급증했다. 이는 코로나19 유행 전 10년간 증가한 대출규모(324조4000억원)보다도 많은 액수다.
대출금은 늘었지만 상환 능력은 약해졌다. 부채 상환능력을 평가하는 지표인 DSR(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비율)은 2019년 37.7%에서 2022년 39.7%로 높아졌다. DSR이 높을수록 상환 능력이 취약하다는 의미다. 금리가 계속해서 오르는 점도 기업들에게 큰 부담이다. 지난달 대출 잔액 기준으로 기업의 72.7%가 변동금리 대출을 이용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전경련은 유사시 기업 유동성 지원을 위한 컨틴전시 플랜도 사전에 강구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