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민 여론이 크지만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사실상 반대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국민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의 평소 모습과는 다소 이례적으로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다양한 정치적 해석이 있지만 향후 총선과 내년 전당대회를 앞둔 국민의힘 내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눈치 보기, 몸 사리기가 아니냐는 비판적 목소리가 나온다.
14일 국회의장 주재로 만난 여야 원내대표는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 대해서는 상당한 이견을 보였다. 민주당은 국회가 국민적 요구에 부응해 조속히 국정조사에 돌입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지만, 국민의힘은 경찰의 강제수사가 우선해야 한다면서 국정조사 시기상조론을 꺼내 들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의 뜻 국회 다수의 요구에 맞게 국정조사를 조속히 실시해 성역 없이 진상을 밝히고 책임 규명하고 재발 방지책 만드는 게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책무”라면서 국정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경찰의 강제수사가 우선돼야 제대로 된 국정조사가 가능하다면서 일단은 지켜보자고 주장했다. 주 원내대표는 “세월호 관련해서도 100차례 이상 협상하고 했지만 사건 진상조사에 너무 집중해 시간이 흘러버리면 재발 방지하는 일은 소홀해지는 경험을 했다”며 “강제수사권이 없는 국정조사보다는 당분간 강제수사에 맡기고 끝나고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재발 방지 대책을 중점적으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론조사 등 객관적인 지표로도 국민 다수가 국정조사 시행에 동의하고 있다. 뉴스토마토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토마토가 8일과 9일 양일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58명을 대상으로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 실시 및 특검 도입’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전체 응답자 56.4%가 찬성한다고 밝혔다. 반대는 35.0%였다.
국정조사를 시행하자는 여론이 국민 과반에 달함에도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사실상 국정조사 시행에 반대한 것은 꽤 이례적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놨다. 윤석열 대통령 눈치 보기라는 주장부터 실질적으로 정쟁을 배제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해석까지 천차만별이다. 그중에서도 ‘윤심’을 의식한 몸 사리는 모습으로 보는 게 꽤 설득력이 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국민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이 이례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차기 총선과 내년 전당대회를 앞둔 가운데 자신의 안위를 보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차 교수는 14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국정조사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크나 그보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속내를 더욱 의식하기에 때아닌 시기상조론을 꺼내 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국민이 이태원 참사에 대해 분노하고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는 만큼 이를 해소하기 위한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여당 의원 다수가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대통령이 강제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하자마자 이내 속내를 감추고는 말을 잘못해 혹여 찍힐까 봐 말을 아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이 정치 경험이 길지 않기에 정무적인 조언이 절실한데도 누구 하나 나서서 직언하는 이가 없다”며 “‘윤심’만 따르다가 정부여당 모두 ‘민심’을 잃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천하람 국민의힘 혁신위원은 원인 규명 없는 국정조사는 결국 정쟁적 요소만 부각할 뿐이라면서 현재 당 지도부가 주장하는 이유가 실질적인 반대의 이유라고 다소 다른 의견을 밝혔다.
천 위원은 같은 날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책임 소재가 명확히 가려지지 않은 가운데 이뤄진 국정조사는 결국 호통치는 모습과 정쟁으로만 점철될 것”이라며 “경찰 수사를 통해 명확한 원인이 나와야만 수사에서 다룰 수 없는 제도적 개선 요구나 정무적 판단이 수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밀어붙이면 어차피 국정조사로 갈 수밖에 없어 강경하게 절대 못 한다는 당내 분위기는 아니다”면서 “아무래도 책임론의 중심에 선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 하는 여당의 일반적 마음이라고도 봐야한다”고 부연했다.
한편 해당 조사는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포인트다. 표본조사 완료 수는 1058명이며 응답률은 4.0%다. 8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를 기준으로 성별·연령별·지역별 가중값을 산출했고, 셀가중을 적용했다.
그 밖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