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의 제3대 최고 지도자였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96세 일기로 사망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장 전 주석은 11월 30일 오후 12시 13분(현지시각) 백혈병 등으로 상하이에서 치료받다 별세했다. 사인은 백혈병으로 인한 장기 기능 부전이다.
신화통신과 CCTV 등 중국 언론은 장 전 주석의 별세를 애도하며 홈페이지 화면을 흑백으로 전환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중앙군사위원회 등은 중국 국민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장쩌민 동지의 죽음은 우리 당과 군대, 민족의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1993년부터 10년간 국가 주석으로 재임한 장 전 주석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잇는 중국의 3세대 최고 지도자로, 중국을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이끌었다는 평가 받는다.
개혁·개방에 따라 주요 사회세력으로 성장한 자본가와 지식인을 포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3개 대표 사상을 발표, 공산당 당헌에 포함시키는 등 중국의 주요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1926년 장쑤성 양저우에서 태어난 그는 1947년 상하이자오퉁대 전자기계과를 졸업했다. 1946년 공산당에 입당했고 1985년 상하이 시장이 됐고 1989년 톈안먼(천안문, 天安門) 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의 뒤를 이어 총서기로 선출됐다. 1993년부터 10년간 중국 국가주석으로 재임하며 중국 최초로 당·정·군을 모두 장악했다. 2003년 후진타오에게 주석 자리를 내줬지만 계속해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장 전 주석은 측근들과 함께 중국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이른바 ‘상하이방’이라는 정치 세력을 조직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정부패 척결작업을 추진한 시진핑 주석 집권을 기점으로 몰락하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16일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개막식에 불참했으며, 2019년 국경일 70주년 기념행사로 후진타오 전 주석과 함께 연단에 선 것이 공개석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다.
주요 외신도 그의 사망 소식을 집중적으로 재조명했다. 최근 시 주석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발한 ‘백지 시위’가 격화하는 가운데 장 전 주석의 사망 소식이 나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 주석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불만이 장 전 주석에 대한 향수를 불렀다는 분석이다.
로이터통신은 “텐안먼 사태에서 학생 시위대에 대한 유혈진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중국인들은 경제 자유화와 정치적 자유를 추억하면서 장 전 주석을 그리워했다”며 “장 전 주석은 사납긴 했지만 때로는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거나 악기를 연주했다”고 평했다.
CNN은 “장 전 주석의 성격과 재능은 통치기간 때론 조롱을 받기도 했지만 최근 몇 년사이 중국 SNS 사용자들이 그의 지도하에서 상대적으로 더 편안했던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를 회상하면서 예상치 못한 인기를 얻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장 전 주석의 사망을 애도하며 시 주석을 장례위원장으로 하는 대규모 장례위원회 명단을 발표했다. 장례위원회는 추도 대회가 열리는 날까지 베이징 톈안먼, 인민대회당, 신화문, 외교부, 해외 대사관 및 영사관 등에 조기를 게양키로 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