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 시즌 4강 이상, 서머 시즌에 우승하면 너희 모두 1군으로 보내줄게.”
2022년 봄, 농심 레드포스 차민규 단장은 ‘LoL 챌린저스 코리아(이하 CL⋅2군)’스프링 시즌을 앞두고 농심 CL 선수들에게 위와 같이 약속했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농심 레드포스 사옥에서 만난 박근우는 “처음 단장님께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되겠어?’라는 생각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은근하게 동기부여가 됐던 것일까. 이날을 기점으로 농심 CL 선수단의 전투력은 상승했다. CL 스프링 시즌을 준우승으로 장식했고, 서머 결승전에서는 담원 기아(현 디플러스 기아)와의 접전 끝 3대 2 승리에 성공하며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박근우는 파이널 MVP에 선정됐다.
작년 12월 22일 농심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농심 CL 선수단 전원을 1군으로 콜업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우발적인 결정은 아니었으며, 3년 전부터 차근차근 이들의 데뷔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박근우는 “팀의 파격적인 제안이 경기력 향상에 분명히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결과가 좋게 나오고 전원이 1군에 합류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팀이 우리를 믿고 있다는 생각에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좋은 결과가 나온 해지만 후회되는 순간도 있다. 스프링 플레이오프 당시 담원 기아와의 대결에서 제이스를 골랐다면 질 수 없다고 느낀 적 있다. 하지만 챔피언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 레넥톤을 선택했다. 챔피언 폭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 확진으로 지난해 11월에 열린 ‘2022 한중일 e스포츠 대회’ 대표팀 선발전 준비에 차질을 빚은 것도 아쉬움이 크다.
“한중일 e스포츠 대회에서는 국가대표로 정말 참가하고 싶었다. 그러나 선발전 당시 코로나19에 확진돼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박근우는 LCK 무대에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다시 뛴다. 자신은 있다. 처음에는 LCK 팀들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불안감이 앞섰지만, 연습경기(스크림)을 치르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LCK 팀들과 스크림을 치르기 전에는 라인전 단계부터 무너질 것으로 예상했다. 스프링 시즌에는 10등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스크림을 치러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2군 탑 라이너의 라인전이 더 어렵다고 느껴진 적도 있다.”
“강팀들과 스크림을 치르며 승률은 60% 미만을 기록하게 됐지만 충분히 도전해볼만 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게임 내용이 좋았다. 결과보다는 내용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
박근우는 중후반 운영 단계를 보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연습과정에서 라인전 체급은 상대에게 밀리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노련한 LCK 팀들의 운영에 고전했다고 설명했다.
“1군과 2군의 가장 큰 차이는 중후반 운영이다. 2군 선수들도 라인전 체급은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운영 단계에서 많이 배우고 있다. 정글러와 서포터의 움직임도 더욱 디테일하다.”
그가 상대했던 탑 라이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KT 롤스터의 탑 라이너 ‘기인’ 김기인이다. 박근우는 지난해 2월 ‘칸나’ 김창동(현 디플러스 기아)의 코로나19 확진으로 긴급 콜업 돼 당시 광동 프릭스 소속이었던 김기인을 상대했다. 그러나 팀은 0대 2로 패배했고, 박근우는 김기인에게 호되게 당했다.
박근우는 이번 스크림에서도 김기인에게 고전했다. 아직 T1과 스크림을 치르지 못했지만, T1의 탑 라이너 ‘제우스’ 최우제보다도 김기인을 더 고평가했다.
“기인은 안정감이 굉장하다. 갱킹도 잘 안당하고 1대 1 라인전 단계에서 심리전도 잘한다고 느껴진다. 제우스도 정말 잘하는 선수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기인이 더 잘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닮고 싶은 선수다. 솔로 랭크에서도 기인이 가장 힘들었고, 그 다음이 제우스였다. 두 선수 말고는 내가 조금 더 잘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농심의 강점은 ‘팀합’이다. 이어 LCK 팀들의 노련함을 극복할 수 있다면 플레이오프(PO) 진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LCK에서도 통할 수 있는 농심의 강점을 꼽는다면 팀합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노련함이나 상대의 플레이를 예측하는 능력은 기존 LCK 팀들이 더 뛰어나다고 본다. 상대의 플레이를 예측하고 이에 따른 플레이를 보여준다면 충분히 PO 진출도 가능하다고 본다.”
노련함과 상대를 예측하는 능력이 뛰어난 베테랑 선수의 부재는 안타깝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도 덧붙였다. 박근우는 “베테랑 선수의 존재가 좋은 것은 맞다. 그러나 ‘피터’ 정윤수가 나름 LCK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잘해주고 있다. 원거리 딜러인 ‘바이탈’ 하인성도 일본 리그인 LJL 경험이 있다. 베테랑 선수의 부재에 대한 걱정은 크게 없다”고 말했다.
박근우의 역할은 자신의 닉네임처럼 팀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것이다. ‘든든한 캐릭터’를 좋아한다고 말한 박근우는 팀원들의 캐리를 돕는 탑 라이너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든든한 챔피언을 좋아해서 닉네임도 ‘든든’이다. 미드 라이너와 원거리 딜러의 캐리력이 높고 서포팅 역할을 수행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자신이 있기 때문에 팀 칼라와도 어울린다. 이러한 메타였을 때 팀의 성적도 가장 잘나왔다.”
박근우는 2023년에는 최고의 무대에서 자신들을 증명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스프링 시즌 목표는 플레이오프다. 우리가 플레이오프 진출권 팀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팬들에게 자신들을 믿어줄 것을 당부했다. “팬들에게는 항상 감사드린다. 준비도 생각보다 잘하고 있다. 좋은 결과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으니 기대해주셨으면 좋겠다.”
성기훈 기자 misha@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