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의무고용’ 어렵다는 기업들…고요한M “직무 만들면 되죠”

‘장애인 의무고용’ 어렵다는 기업들…고요한M “직무 만들면 되죠”

기사승인 2023-02-18 06:00:09

지난해 12월 23일 밤 10시쯤 집주인으로부터 수도계량기 동파가 우려된다는 연락은 받은 박영선(30·가명) 씨는 강남에서 급하게 택시를 잡았다. 박 씨는 택시에 탑승하고 나서야 자신이 탑승한 차가 청각장애인 기사가 운행하는 택시(고요한M)임을 알았다. 박 씨는 문득 기사에게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 때 조수석 뒷자리에 기사님과 소통하도록 마련된 태블릿PC를 발견했다. 우려와 달리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기사님께서 먼저 결제 방법, 지름길 등에 대해 태블릿PC를 통해 질문했다. 하차 직전 박 씨는 다음과 같은 메모를 기사님께 전달했다. 


사진=제보자 제공

박 씨는 18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취업에 성공하는 장애인이 드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연한 계기로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면서 “편견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고요한M은 2018년 6월 SK텔레콤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SK텔레콤과 코액터스는 장애인의 사회 진출 활성화와 모빌리티 서비스 혁신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소셜 벤처의 아이디어와 SK텔레콤 ICT 기술력을 통한 장애인 취업 문제 해결에 나서게 됐다.

SK텔레콤과 협력하고 있는 코액터스(고요한M) 대표 송민표 씨는 “장애인 고용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라면서도 “장애인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들을 위한 직무를 만들어야 하는데 회사 입장에서 생소하고 부담이 되어 망설인다”고 말했다. 이어 “코액터스는 휠체어가 택시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등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모빌리티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국민 20명 중 1명이 장애인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도 국내 등록장애인은 264만5000명으로 전체 국민의 5.1%에 달한다. 이러한 발달장애 인구는 전 연령대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장애인 의무고용률 3.1%(300명 이상인 민간기업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기업이 419곳에 달한다.

고용노동부는 매년 4월 장애인 고용률이 현저히 저조한 기업에 사전 예고 후 11월까지 신규채용이나 구인진행 등 시정조치 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기한 내에 시정하지 않은 기업에 한해 12월에 명단공표를 하는데, 공표된 기업들은 의무고용 이행률에 따라 부담기초액을 산정해 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단 장애인 고용률이 저조해 사전예고 되었더라도 합당한 구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명단 공표 대상에서 제외한다. 

최근 ESG 경영 확대 방침으로 장애인 고용에 대한 사회적 기능이 강조되고 있지만, 대부분 장애인 채용 보다는 환경에 무게를 싣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해 국내 해운업계 최초로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9000TEU급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9척을 발주한 HMM이 그 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HMM은 ESG 경영을 위한 탄소중립을 실천하면서도 2021년 장애인 고용률이 0.51%(8명)에 그쳤다. 이들은 영업, 관리지원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HMM 관계자는 “직원들은 배를 타는 해상직이나 영업직으로 나뉜다”며 “전 세계에 걸쳐있는 화주들이 사업 대상인만큼 언어적인 한계가 많아 장애인을 고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고용부는 “장애인 고용은 ‘의지’가 중요하다”며 “ESG 경영을 많이 하는 추세인 데다 장애인 고용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이어 “과거에는 제조업, 반도체, 바이오 업체에 장애인 고용이 힘들다고 판단해 의무고용률을 차등 적용했지만, 여러 논의와 점검 끝에 장애인을 고용하기 힘든 것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모아져 차등 적용 자체를 없앴다”고 설명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신규 채용을 독려하기 위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장애인을 위한 직무개발도 하고, 미고용 부담금으로 고용장려금, 장애인 직업훈련, 근로 지원 등 장애인 근로자, 구직자를 위해 사용한다”고 덧붙였다. 

사진=제보자 제공

더디지만 바뀌는 사회

사내 카페와 지방 사업장에서 장애인의 특성에 맞게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는 한 기업 관계자는 기업 내 장애인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히 예산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해당 기업 관계자는 “장애인을 고용하는 기업들이 느끼는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조사하는 과정도 중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장애인을 고용하고 싶어도 필요한 설비, 인프라를 먼저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고용률이 저조한 기업 관계자는 “사내에서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화장실, 이동 경로 등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데 드는 비용이 부담돼서 과태료를 내는 쪽을 선택한다”며 “바이오나 반도체 등 자동화 시스템이 갖춰진 근무 환경에서 장애인을 고용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한편 2021년 기준 200대 기업 중 정부 기준치(민간 3.1%. 공공기업 3.4%) 장애인 고용률을 이행한 기업은 단 18개사에 그쳤다. 81개 사는 장애인 고용률을 공시조차 안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규정이 있음에도 장애인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37.3%, 고용률은 34.6%, 실업률은 7.1%에 그치는 현실이다.

조은비서명

 

조은비 기자 silver_b@kukinews.com
조은비 기자
silver_b@kukinews.com
조은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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