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채용이 보장된 반도체 계약학과에서 ‘무더기’ 등록 포기가 발생했다. 업계에서는 인력 양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17일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3학년도 서울 주요 대학 반도체 관련 학과 수시 모집에서 199명의 추가 합격자가 발생했다. 1.5배 많은 추가합격자가 나온 것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연세대학교 시스템반도체공학과 수시 모집에서는 40명 정원에 72명이 추가 합격했다. 최초 합격자들 다수가 등록을 포기, 후순위 지원자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뜻이다. 해당 학과는 졸업생이 삼성전자에 자동 취업하는 계약을 맺고 있다. 고려대학교 반도체공학과는 20명 모집에 24명 추가합격, 서강대학교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20명 모집에 47명 추가 합격, 한양대학교 반도체공학과는 24명 모집에 36명 추가합격이다. 모집 대비 120%~235% 인원이 충원됐다. 이들 세 대학은 SK하이닉스와 취업 계약을 맺었다.
정시에서도 등록 포기가 속속 나오고 있다. 추가 모집은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중간 집계 상황을 살피면 연세대(정시 10명 모집)에 13명이 충원됐다. 고려대(11명) 7명, 서강대(10명) 8명, 한양대(16명) 44명이다. 입시업계에서는 지난해보다 많은 추가합격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놨다. 지난해에는 연세대 정시 22명 모집에 37명이 충원됐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등록 포기 학생 중 대다수는 의·약학 계열로 간 것으로 분석된다”며 “의·약학 계열은 평생 쓸 수 있는 자격증이기에 대기업 취업만으로는 큰 유인이 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더기 등록 포기는 반도체 인력 양성을 강조 중인 업계 분위기와 대조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같은 날 오전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반도체 생산 현장을 둘러본 후 “어려운 상황이지만 인재 양성과 미래 기술 투자에 조금도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림대 도헌학술원 개원 기념 학술 심포지엄에서 “마이크론은 지난 2013년 일본 엘피다를 인수하면서 일본 인재 덕분에 D램을 빠르게 키웠다”며 “인적 경쟁력이 사업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좀 더 보완된 육성정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예상과 달리 반도체 계약학과 등록률이 저조해 당황스럽다”며 “반도체 엔지니어로서도 비전과 밝은 미래가 있다는 걸 제시할 수 있도록 기업과 학계, 정부 모두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