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고비에 섰다. 한때 선두를 달리던 기세가 꺾인 모습이다. 김기현 후보에게 1위를 빼앗긴 데다 천하람 후보에게도 추월당할 위기에 놓였다.
최근 안 후보 지지율은 복수의 당대표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하락세를 탔다. 한국여론평판연구소(KOPRA)가 퍼블릭오피니언에 의뢰해 지난 18~19일 국민의힘 당원 4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당대표 지지율 조사 결과, 안 후보는 20%를 기록했다. 김기현 후보(47%)에 오차 범위 밖에서 뒤졌다. 천 후보는 18%를 얻으며 안 후보를 바짝 추격했다. 황교안 후보는 13%였다.
이는 2주 전 여론조사 결과와 확연히 다르다. SBS가 넥스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6~7일 실시한 당대표 지지도 조사(전국 18세 이상 국민의힘 지지층 309명,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5.6%p)에 따르면 안 후보는 32.9%, 김 후보 25.6%, 황 후보 8.4%, 천 후보 3.3%였다.
여론조사 흐름을 살펴보면 안 후보의 하락세는 천 후보의 상승세와 맞물린다. 안 후보의 지지층이 천 후보로 이동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유승민·나경원 전 의원 불출마 선언 당시 비윤계가 결집하면서, 한때 여론조사 지지도 1위를 달리던 안 후보가 더 이상 기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혔다는 해석도 나온다.
안 후보의 우유부단한 태도도 지지율 하락 요인으로 꼽힌다. 안 후보는 윤 대통령과 인연을 강조하고 친윤계 인사들과 선을 긋는 전략을 취했지만, 대통령실의 공개 경고 직후 후퇴했다. ‘친윤계 비판’이라는 의제를 내려놓으면서, 친윤계에 거부감을 가진 당심 일부가 ‘비윤’을 자처하는 천 후보에게 흡수됐다.
김성태 국민의힘 중앙위원회 의장은 지난 17일 KBS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서 안 후보가 선거운동 방향을 잘못 잡은 탓에 지지율 정체·실버크로스(2위와 3위가 자리를 바꾸는 것) 현상에 쫓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안 후보는 스텐스 자체가 어정쩡하다. 책임당원의 당심을 지금 이기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를 틈 타 천하람 후보는 지지율 역전을 노리고 있다. 그는 지난 20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늘 투표해도 제가 안철수 후보는 넘었다. 굳이 안 후보를 뽑아야겠다는 당원이 있겠나”라며 “안 후보는 우왕좌왕,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본인의 위치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천 후보는 지난 6일에도 안 후보를 향해 “기회주의적으로 간 보는 정치를 하고 있다. 이제는 새 정치 흔적만 남은 비윤 구태 정치인이 돼버렸다”고 일갈했다.
양측 관계에서 주도권을 거머쥐려는 야심도 드러냈다. 천 후보는 전날 대전대학교맥센터에서 열린 제3차 전당대회 대전·세종·충북·충남 합동연설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안 후보에게 이태원 참사 이후 상권 회복을 위한 동행을 제안했다고 공개했다. 안 후보 측이 ‘인사치레’라고 선을 긋자 재차 “꼭 함께하자”고 압박했다.
일각에서는 ‘천안연대’를 평가 절하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안 후보가 작은 요소에 좌지우지돼 큰 판을 읽지 못할 경우, 정치적 입지가 위험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안철수 후보는 국민의힘에 온 지 지금 1년이 안 됐다. 일단 갖고 가야 될 자산”이라며 “그런데 표 때문에 (천 후보처럼) 국민의힘의 힘을 빼는 분과 연대를 하겠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좋지 않다. 안철수 후보가 딱 부러지게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장래가 밝아진다. 멀리 봐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에게 ‘선택의 시간’이 임박했다는 시선도 있다. 반윤 선봉에 서 친이준석계와 협력하는 모험을 할지, 윤심에 의탁해 차기 총선 입지를 다질지 결정할 시기라는 것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안철수 후보는 늘 타이밍을 놓치는 게 문제”라며 “안 후보는 지난 대선에도 뜸 들이다가 결국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와 막판 단일화를 선언했다. 국민의힘에 뿌리를 내려 정치적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번 당대표 선거도 비슷하다. 결선투표에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김기현 후보를 이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 타격이 뒤따라올 것”이라며 “우유부단한 태도는 리더 자질에 대한 신뢰성을 잃게 만들고, 지지율 하락을 부른다. 안 후보가 정치적 득실을 따져 빠르게 결단해야 할 시기”라고 조언했다.
한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