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문제로 바람 잘 날 없는 정치권에 또다시 ‘자녀 리스크’가 불거졌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가 자녀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하루 만에 낙마하면서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사태에 대한 태스크포스팀(TF)을 꾸리겠다며 공세를 펼치자, 국민의힘은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 자녀의 성추행 문제를 소환하며 맞불을 놨다.
전여옥 전 의원은 27일 자신의 SNS를 통해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건은 참 유감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어제 사퇴 이후 조용하다. 그 이유는 ‘정청래한테 불똥이 튈까 봐서’란다”라고 질타했다. 이어 “정청래 아들이 중1 때 같은 학년 여중생 가슴을 만지는 성추행을 저질렀을 때 정청래는 납작 엎드려 ‘문제의 행동’이라고 대충 표현했다”고 질타했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2017년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당시 글에서 정 의원은 일부 매체가 보도한 ‘전직 의원 아들의 성추행 사건’을 언급하며 “제 아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2015년 당시 제 아이와 피해학생은 중학교 1학년, 만 12세였고 친구 사이였다. 그 때 제 아이가 문제의 행동을 하였고, 피해학생이 거부하자 행동을 중단했다”며 “이후 중학교 2학년 때 제 아이가 피해학생에게 익명으로 부적절한 메시지를 보냈고 피해학생이 이를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이어 “제 아이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죄송스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전 전 의원은 이를 재소환하며 맹비난했다. 그는 “정청래는 장문의 SNS를 올려 ‘신문에는 익명이나 내 아들 맞다’고생색을 내며 사죄한다고 했다”며 “그런데 정청래 셋째 아들은 못된 짓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가정법원 재판정까지 갔다”고 했다. 이어 “진짜 놀라운 것은 정청래 아들에게 강제 전학 등 학교의 처벌이 없었다는 것”이라며 “그 피해자 여중생과 가해자 정청래 아들은 한 학교를 계속 다녔다. 이것은 고문이자 악몽”이라고 지적했다.
정 최고위원의 사퇴도 촉구했다. 전 전 의원은 “이 사건이 터졌을 때 정청래는 국회의원이 아니었다. 그래서 유야무야 넘어간 듯하다”며 “그런데 지금은 국회 제1당 수석최고위원에 과방위원장이다. 국수본 본부장보다 훨씬 센 힘을 지닌 빵빵한 자리에 앉아있다. 정순신은 아들의 고등학교 때 일로 사퇴했다. 그렇다면 정청래도 당연히 사퇴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 역시 “내로남불 정당이 아니라면 같은 당 소속 정청래 최고위원 자녀의 여중생 성추행, 성희롱 의혹부터 그 TF에서 조사하라”고 맞받아쳤다.
앞서 신임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는 임명된 지 하루만에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지난 2018년 학교폭력 가해자인 자녀의 전학 처분을 막기 위해 재심 청구·행정소송 등으로 전학 절차를 약 1년 간 지연시킨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지난 2017년 자립형사립고에 다니던 정 변호사의 아들은 동급생에게 언어폭력을 가해 이듬해 전학 처분을 받았다. 정군은 정시 전형으로 합격, 현재 서울대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불거지자 정 변호사는 25일 오후 입장문을 내고 “저희 아들 문제로 송구하고 피해자와 그 부모님께 저희 가족 모두가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한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는 “저희 아들 문제로 국민들이 걱정하는 상황이 생겼고, 이러한 흠결을 가지고서는 국가수사본부장이라는 중책을 도저히 수행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국가수사본부장 지원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해명과 인사 검증 책임자에 대한 문책을 촉구하고 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26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당시 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정 변호사의 아들은 전혀 반성하지 않았고 아버지인 정 변호사는 오히려 징계 절차를 막았다”며 “이런 사람을 국수본의 수장에 앉히려 했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은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당 차원의 태스크포스(TF) 구성을 통한 진상규명 의지도 드러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전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시·도당 및 지역위원회 을지로위원장 리더십 워크숍에 참석한 뒤 취재진과 만나 “필요하다면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학교 폭력 관련 진상을 규명하겠다”며 “잔인한 학교폭력 소재를 다룬 드라마 ‘더 글로리’가 현실에 나온 것 같아 충격이다. 교육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들과 주말을 거쳐 상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치인들의 자녀 리스크는 처음이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남의 성매매·상습도박 의혹이 대표적이다. 장남 이동호씨는 2020년 3월 한 사이트에 마사지업소의 후기를 남겨 성매매 의혹이 제기됐다. 상습도박 역시 미국에 서버를 둔 온라인 포커 커뮤니티에 200여건의 게시글을 올리고, 해외 포커 사이트 칩(게임 머니)를 거래하자는 등의 글을 100여건 올린 사실이 확인되면서 의혹이 불거졌다. 또 이씨는 도박 관련 커뮤니티에 아이돌 멤버와 일반인 여성 사진에 성희롱하고 비하하는 댓글을 수차례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 대표는 지난 2021년 “아들에 잘못에 대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90도로 머리를 숙인 바 있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도 자녀 문제로 수차례 고개를 숙였다. 장 의원의 아들 장용준씨는 2019년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내고 운전자를 바꿔치기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년 뒤 다시 무면허 운전 사고를 낸 뒤 경찰을 폭행해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지난해 10월까지 구치소에 수감됐다. 아울러 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자 비하, 부산 폭행 시비, 코로나19 재난지원금 대상자 비하 등 잇따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장 의원은 지난 2017년과 2019년, 2021년까지 2년에 한 번씩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