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히 드물게 일어나는 전신농포건선은 걷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통증을 유발하고 재발률이 높은 질환이다. 그 동안 마땅한 치료제가 없었지만, 지난해 신약의 등장으로 희망을 보게 됐다.
하지만 극도로 낮은 유병률에도 아직 희귀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해 금액적 부담을 오롯이 환자가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질환 특성 및 환자 삶의 질을 반영해 전신농포건선 역시 희귀질환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전문가와 환자 의견이 제기됐다.
정경은 충남대학교병원 피부과 교수(대한건선학회 교육간사)는 6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삶을 위협하는 희귀질환의 국가 관리 강화방안 모색 토론회’를 통해 전신농포건선 질환의 희귀질환 보장성 강화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전신농포건선은 온몸에 통증을 수반하는 고름 물집인 농포가 생기는 질환이다. 또한 전체 건선 환자의 1% 미만, 전 세계 사람들 중 0.004%가 겪는 희귀질환으로 국내에서는 2021년 기준 3천여 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주로 생계 및 자녀·부모 세대 부양을 책임지는 50~60대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정 교수는 “전신농포건선은 일반 건선보다 농포, 고름, 발진이 심해 고열이 나고 통증이 심하다. 걷거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또한 증상이 나타나는 부위가 전신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피부질환 중에서도 중증도가 심한 편”이라며 “무엇보다 재발성, 지속성 질환이기 때문에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입원이나 사망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증상과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반 중증 건선 환자는 희귀질환으로 지정 받아 의약품 처방 시 국가 지원을 받지만 전신농포건선은 희귀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해 환자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해당 질환을 희귀질환으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전신농포건선은 환자들에 의해 2018년 최초로 국가관리대상 희귀질환으로 신청됐지만 지속된 심의 보류로 인해 5년째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2020년 진단 및 치료에 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낮다는 이유로 미지정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진단, 치료 과정에서 본인부담금이 다른 질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이에 지난해 대한건선학회가 재신청을 했지만 3년이라는 재검토 기간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됐다. 재심의는 올해 이뤄질 예정이다.
희귀질환 지정이 늦어지자 환자들의 고통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전신농포건선 환자 김모씨(40대)는 10년 넘게 고생 속에 살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영유아 시절부터 살갗이 자주 벗겨지고 자는 도중 온 몸을 긁어 피가 나기도 했다. 스무살이 넘어서는 계속해서 재발하는 바람에 직장을 제대로 다닐 수 없었고 반복되는 입원으로 승진 기회까지 놓쳤다.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과를 찾기도 했고, 떨어진 자존감과 삶의 질로 인해 남의 시선을 피해다니기도 했다.
김씨는 “인생의 4분의 1을 질환과 싸우는 데 썼다. 잃어버린 세월을 되돌릴 수도, 보상받을 수도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며 “작은 바람이 있다면 매번 만만치 않게 지출되는 약값 정도라도 국가가 조금 더 지원해줬으면 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김씨에 따르면 한 번 병원 갈 때마다 보통 15~20만 원을 지출하고, 자주 갈 때는 한 달에 4차례까지 진료를본다. 월 80~100만 원이 쉽게 빠져나간다. 사회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없는 전신농포건선 환자들에게는 부담이 몇 배로 더 크다.
김씨는 “전신농포건선은 국가가 관리하는 희귀질환으로 지정돼야 한다”며 “어떤 사람이 살이 녹아내리고, 살갗이 까지는데 멀쩡히 생활할 수 있겠는가. 국가가 도와주지 않고 그런 사람들에 대한 지원과 처우 개선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우리처럼 사각지대에서 병마와 싸우고 병원생활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 환자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질병관리청은 희귀질환 지정 제도를 정비해 적극 검토해나가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지원 질병관리청 희귀질환관리과 과장은 “그 동안 희귀질환 지정을 신청하고 미지정된 경우 재심사까지 3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전신농포건선 사례처럼 오래 기다린 환자들이 있어 1년 후 재심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개편했다. 전문위원도 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확대 모집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다각도의 의견 수렴을 거쳐 보다 많은 환자가 지원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제도 개선에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을 적극 찾아나가겠다”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