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부모 찬스’ 논란이 반복하고 있다. 공정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MZ세대는 무력감을 토로하고 있다.
앞서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는 지난 25일 낙마했다. 자녀의 학교폭력 논란 탓이다. 정 변호사 아들은 2017년 자립형사립고에 재학할 당시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던 동급생에게 8개월에 걸쳐 학교 폭력을 가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재심을 거쳐 전학 처분도 받았다.
문제는 정 변호사가 법조계 인맥을 동원해 ‘아들 지키기’에 나섰다는 점이다. 피해자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전학 처분이 부당하다며 춘천지법에 2018년 7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대리인은 정 변호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판사 출신 변호사가 맡았다. ‘시간 끌기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은 극에 달했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등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불가능했다. 반면 정 변호사 아들은 2020년 정시모집으로 서울대에 합격했다.
정치권 내 부모 찬스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조국 사태’가 대표적이다. 지난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학교 교수가 재직 중인 대학에서 표창장을 위조해 자녀의 입시에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의의 아이콘이었던 조 전 장관이 의혹 중심에 서자, 여론은 들끓었다. 단순한 위법 논란을 넘어 한국사회의 공정과 청년세대의 불평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청년들은 입을 모아 분노를 표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박모(31·여)씨는 “부모 잘 만나면 학교폭력을 저질러도 되는 건가. 가해자가 명문대로 진학하는 게 과연 공정인지 의문”이라며 “부모가 대리시험을 치고,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주는 과거 입시 비리 사건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토로했다. 서울에서 재직 중인 이모(38)씨도 “이젠 분노보다는 체념하는 게 익숙하다”라며 “새로운 정치나 공정을 원하는 건 포기해야 하나 싶다. 내 자신은 내가 챙겨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공정 문제는 청년세대의 ‘역린’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이 너무나 각박한 탓이다. 청년세대는 유례없는 집값 폭등, 취업난을 겪고 있다. 내 집 마련은 고사하고, 연애·결혼·출산마저 포기한 ‘N포세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대다수 청년에게 수저 계급론은 먼 얘기가 아니다. 부의 대물림 속에서 기회 사다리가 무너졌다고 느낀다. 부동산, 일자리 등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된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출발선부터 뒤처진 청년들에게 공정한 기회·경쟁은 마지막 기댈 곳이다. 문제는 이마저도 부모의 특권 세습에 밀려나고 있다는 점이다. 장성철 정치평론가는 “청년들이 유독 분노하는 사건들은 불공정 이슈와 연관돼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기득권층의 부모 찬스로 인해 공정한 기회가 박탈됐을 때, 후폭풍이 어마어마하다”라고 분석했다.
이런 특징은 청년들이 정치를 대하는 태도와 직결된다. 특정 정당·인물만을 지지하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MZ세대는 진보·보수 이념과 지역에 얽매이지 않는다. 대신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행동한다. 비리·특혜가 없는 공정한 사회, 노력으로 성취 가능한 삶, 남녀차별이 없는 사회를 이룩할 만한 정치인에 표를 던진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치권이 청년들의 신뢰를 되찾고,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공정 가치를 실현하는 게 선 과제”라며 “부모 찬스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 성역 없는 진실 규명과 후속 조치가 관건”이라고 제언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