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결국 당대표마저 고개를 숙였다.
검찰은 민주당 2021년 전당대회 과정에서 9400만원의 불법 자금을 조성, 선거인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는 정치인 9명을 수사 중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윤관석·이성만 의원,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 강래구 한국감사협회장, 강화평 전 대전 동구 구의원 등이다. 2021년 5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은 송영길 전 대표의 보좌관 출신 박모씨도 피의자 명단에 포함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7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국민께 심려를 끼친 것에 당 대표로서 깊이 사과한다”며 “민주당은 확인된 사실에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조치를 다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초 계획과 달리 당 차원의 자체 진상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 대표는 “수사기관에 정치적 고려를 배제한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한다”며 “이를 위해 송영길 전 대표의 조기 귀국을 요청했다는 말씀도 드린다. 정확한 사실 규명과 빠른 사태 수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피력했다.
이 대표의 태도는 ‘검찰의 기획 수사’라고 주장하던 사태 초기와 온도 차가 극명하다. 변화 저변에는 이번 사태가 내년 총선의 ‘대형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공식 사과 등 정면 돌파를 통해 부패정당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을 차단하려는 포석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만 불씨는 남아있다. 조사 결과 출당 조치 등의 강력한 징계가 나올 경우, 이 대표는 이중잣대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반면에 징계가 소극적일 경우 내부 계파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제2 이심송심(이재명의 마음과 송영길의 마음이 같다)’ 논란이 재점화해 당내 계파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다.
앞서 송 전 대표는 2021년 당대표 선거에서 이 대표 측 지지자들의 지지를 받아 신승한 뒤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이심송심’ 논란에 휩싸였다. 송 전 대표는 이낙연 전 대표 측의 경선 연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경선을 중도 포기한 정세균·김두관 후보의 득표를 무효표 처리하면서 이 대표를 결선투표 없이 대선 후보로 확정했다. 대선 패배 후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 이 대표는 송 전 대표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각각 출마했다. 이 대표가 송 전 대표를 감쌀 경우,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의심을 살 만한 대목이다.
당내에서는 향후 여파를 우려하는 모습과 자성의 목소리가 교차하고 있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 출연해 “이런 쓰레기 같은, 아주 시궁창에서만 볼 수 있는 냄새나는 고약한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며 “민주당 소속 의원으로서 할 말이 없다”고 탄식했다. 이어 “민주당이 자정기능을 제대로 작동 못 하고 검찰 수사에만 이끌려 다니면 결국 국민들로부터 내팽개쳐질 것”이라며 “온정주의에 젖거나 엉거주춤하거나 칼날이 무디거나 이러면 그냥 주저앉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차기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한 이원욱 민주당 의원도 같은 날 BBS 라디오에서 “당을 해체할 정도의 위기감을 갖고 이 사안을 대해야 한다는 정도의 자성과 반성, 결단의 모습이 필요해 보인다”며 “철저한 진상조사를 먼저 하고 검찰의 수사 상황을 지켜봐야 하고,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향한 압박 수위를 바짝 끌어올렸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쩐당대회’의 실체는 엄중한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것이며 이 과정에서 만약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민주당은 ‘비리 방탄 정당’의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절멸할 것”이라며 “이재명 대표는 송영길 전 대표의 지역구 상속자로서 역할을 할 것인지, 공당 대표로서 책임감 있는 역할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때”라고 저격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