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수 1500만. 애완동물보다 반려동물이 더 익숙한 시대다. 하지만 펫숍은 60일 된 새끼강아지들을 전시하며 여전히 성업 중이다. 최근 프리미엄과 혈통견을 앞세운 고급 펫숍도 나타났다. 화려한 펫숍 이면엔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한다. 열악한 환경의 개농장 출신 농장견들이 펫숍에 흘러드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개농장 강아지들은 뜬장(배설물을 쉽게 처리하도록 밑면에 구멍 뚫린 개사육장)에서 땅 한 번 밟지 못하고, 출산을 반복하는 일이 흔하다. 반려동물을 대하는 사람들 인식은 일부 바뀌었지만, 강아지들은 여전히 농장에 머물고 있다.
충무로 애견거리 펫숍 가봤더니
“편하게 둘러보고 가세요.” 지난 2일 오후 서울 충무로 애견거리 한 펫숍에 들어가자 들은 말이다. 순간 이곳이 마트인가 헷갈렸다. 시선을 옮기자 두세 뼘 크기의 작은 진열대들이 보였다. 주먹 크기 강아지들이 약 10마리 정도 진열돼 있었다. 말티즈부터 말티푸(말티즈와 푸들 믹스), 포메라니안, 미니비숑, 토이푸들 등 인기 품종견들이 즐비했다. 진열대 안에는 강아지와 빈 밥그릇, 매트뿐이었다.
반려동물들의 낑낑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일부 동물은 좁은 케이지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잠을 자기도 했다. 점주는 한 마리씩 꺼내 털을 다듬는 등 외모 관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진열대엔 배변 패드가 없었다. 대신 바닥에 깔린 매트에 소변 자국이 보였다. 반려동물의 환경보다 외모에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낑낑거리는 소리가 살려달라고, 구해달라고 외치는 것처럼 들렸다.
“어떤 종, 얼마에 찾으세요.” 손님이 들어오자 점주 A씨가 물었다. 그는 미니비숑을 찾는다는 손님에게 한 진열대를 가리키며 “강남이면 150만원 이상에 분양될 개”라고 소개했다. 분양가는 품종에 따라 적게는 50만원, 많게는 100만원을 웃돌았다. A씨는 “같은 배에서 태어나도 모량과 색 진하기에 따라 분양가가 다르다”며 “이 개는 눈도 크고 모량이 많아 90만원에 분양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전 개농장이 없어지고 반려동물 판매법이 엄격해졌다”며 “전문켄넬(생산자)이 분양가를 높게 부르며 반려동물 분양비도 많이 올랐다”고 부연했다.
A씨가 언급한 반려동물 판매법은 지난달 27일부터 시행된 동물보호법과 동물보호법 시행령·시행규칙을 말한다. 과거 반려동물 수입, 판매, 장묘업은 ‘등록제’로 운영됐으나, 법 개정으로 ‘허가제’로 바뀌었다. 이제 무허가 영업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분을 받는다. 지난 2일 전북 진안군에서 100마리 규모 무허가 번식장이 적발돼 폐쇄 조치된 일도 있었다.
유전병‧품종 사기‧품종 개량까지
최근엔 미니비숑, 토이푸들, 말티푸 등 4㎏ 이내 초소형견이 인기가 많다. 충무로 애견거리 펫숍 점주들은 하루 평균 네 마리 정도가 입양을 간다고 했다. 작은 강아지와 순종 강아지의 인기는 몇 가지 문제점을 유발했다. 순종, 순수 혈통 강아지를 만들기 위해 근친교배를 했을 때 생기는 유전병이 대표적이다. 특정 형질이 유전되면 질병에 취약하고 수명도 줄어들기도 한다. 지난 2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전북 진안군에서 불법 개농장을 8년째 운영한 B씨는 “강아지를 번식하며 품종 개량을 한다”며 “국내에서 유전병을 다 제거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국과 동물보호단체 등은 B씨가 품종 개량한 강아지를 펫숍에 판매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한다.
번식장을 거쳐 펫숍에서 분양되는 강아지들은 면역력이 약해 질병에 취약하다. 4년 전 펫숍에서 90만원에 포메라니안을 분양받은 한나라(26‧여‧직장인)씨는 “분양받은 직후 병원에서 검진했더니 심장병으로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다”고 했다. 한씨는 “250만원을 들여 수술했다”며 “이후 소비자분쟁 조정에서 펫숍이 의도적으로 병을 숨긴 정황이 확인돼 분양비를 돌려받았다”고 덧붙였다. 한국소비자연맹 조사에 따르면 2020년 반려동물 관련 소비자 피해 2122건 중 분양 관련 피해가 1624건(73.4%)로 가장 많았다. 이 중 분양 후 반려동물이 폐사하거나 질병에 걸리는 경우가 984건(60.6%)이었다. 분양 후 3일 이내 질병 발병‧폐사한 경우는 38.3%, 7일 이내 발생 비율은 59.8%로 나타났다.
품종 사기를 당하는 일도 많다. 인기 품종인 포메라니안은 한 번 출산 시 1~3마리 새끼를 낳는다. 일부 개농장에선 포메라니안과 비슷한 품종이며 더 큰 제페니스 스피츠와 교배시켜 어린 시절 잘 구분되지 않는 폼피츠를 낳게 한다. 폼피츠를 포메라니안으로 속여 분양하는 사건은 종종 일어난다. 네이버 카페 강사모에 ‘폼피츠 사기’를 검색하면 게시글 568건이 나온다. 대부분 포메라니안을 분양받은 이들이 폼피츠로 의심하는 글이다.
품종개량으로 반려동물이 점점 작아지는 점도 문제다. 최근 인기인 미니비숑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품종이다. 미니비숑의 모체인 비숑 프리제는 5~8㎏ 정도다. 그러나 사람들이 4㎏ 내외 작은 개를 선호해 비숑 프리제를 푸들, 말티즈 등과 이종 교배시켜 미니비숑이 탄생했다. 순수 혈통견을 보호하는 세계적인 반려 단체인 켄넬 클럽은 미니 비숑 프리제를 공식 견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또 다른 인기 견종인 토이 푸들도 21~34㎏인 스탠더드 푸들의 개량 품종이다. 점점 작게 개량돼 미디엄 푸들, 미니어처 푸들, 토이 푸들이 탄생했다. 더 작게 개량하는 과정에서 슬개골 탈구나 기관지협착증 같은 유전병이 유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재인(27‧여‧직장인)씨는 “미니비숑을 가족으로 맞이하면서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게 됐다”며 “비숑 프리제를 작게 만드는 여러 과정은 엄청나게 기괴했다”고 비판했다. 정씨는 “억지로 작게 만든 강아지는 관절 질환이 고질병”이라며 “반려견과 반려인은 이 사실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