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이제 지방대학 시대’를 선언하며 국정과제 중 하나로 ‘지자체로의 대학지원 권한 이양’을 내세웠다. 중앙에서 도맡았던 대학 교육의 전반적인 권한과 책임을 지방정부에 넘기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지역대학들 사이에선 ‘중앙정부가 지역 일을 지역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지방소멸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일 대학재정지원사업 집행 권한의 일부를 지자체로 이관하는 내용의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구축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부 계획에 따르면 지역과 대학의 공동위기 해결을 위해 지자체 주도로 지역발전과 연계하여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역대학에 투자할 수 있도록 지자체의 대학지원 권한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최종적으로 2025년부터는 대학재정지원사업 예산의 50% 이상을 지역주도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또 현재 비수도권 대학 30곳을 글로컬 대학으로 선정해 5년 간 학교 당 1000억 원씩을 지원하고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지방대학 살리기에 나선 배경에는 지방소멸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3월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소멸위험단계 지역은 113곳(49.6%)로 집계됐다. 감사원의 분석에 의하면 2047년에는 157개 지역이 고위험단계가 되어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이 소멸위험에 놓이게 될 전망도 나왔다. 반면 지난해 수도권 인구는 처음으로 2600만 명 선을 넘어서면서 대한민국 총 인구수 5182만 명 중 전 국민의 과반수가 수도권에 살고 있다.
“지역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 아니냐”
정부의 이같은 교육 방향에 지역대학 관계자들은 ‘불확실성만 더 커졌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충청권의 한 사립대학교 교수는 11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지자체 권한 확대에 대해 “교육부가 관리하고 선정했던 사업들을 없애버리고 지역으로 넘겨주고 지역에서 알아서 해라는 식”이라며 “대학에 대해 뭘 어떻게 해야 될 지 지자체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 오히려 지자체에서 무슨 사업을 하면 되는지 아이디어를 달라고 하는 실정인데 교육부는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남권 한 대학교 관계자는 “학령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정부의 rise 구축 사업은 진정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전혀 다른 방향”이라며 “지금까지도 교육부가 지방대학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생각되는데, 이제는 더 심각해지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 “2년동안 시범기간 거쳐 우려 해소시킬 것”
교육부는 시범기간을 거쳐서 2025년도까지 체계를 잘 구축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현재 지자체에 대학 지원을 담당하는 인력이 부족하고 역량도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시범지역 운영을 통해 지자체에 대학 지원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하고 대학 예산을 지자체에 보내면 전문적으로 집행하고 관리하는 별도의 기관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2025년 도입을 위해 2년동안 이같은 우려를 충분히 해소시킬 만큼 준비를 거쳐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 한 관계자는 본지에 “지역에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지역에 맡기겠다는 것”이라며 “지역 수요를 충실히 반영해서 대학 발전을 위해 예산을 충실하게 쓰일 수 있도록 성과 관리 체계와 모니터링 할 수 있는 방안들도 마련하고 있다. 지역에 다 떠넘기겠다는 것이 아닌 지역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에 맞추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향 평준화가 진정한 개혁...상당한 재정 투입 절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책목표를 재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수도권 대학이 가지고 있는 물적 토대, 지리적 위상, 사회적 지위, 미래적 가치 등도 지방대학에 향유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과감한 정책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방대학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지역에 거주하는 대학생들이 지역 학교에서도 질적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지역 대학의 선호도를 수도권 대학 기준만큼 끌어올려야 한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일 본지에 비수도권 글로컬대학 30곳 선정 정책에 대해 “방치형 경쟁방식으로 보여 혼란만 키울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은 고등교육 생태계를 장단기적으로 어떻게 살릴 것인지 밑그림을 국민에게 선보이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범 교육 평론가는 “교육 정책의 대안들이 밋밋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교육부가 돈을 쓸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며 전국 대학의 상향 평준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반 국민들은 이 대학 말고 저 대학을 간다 하더라도 떳떳하고 부끄럽지 않도록 하는 선택지를 많이 만들어줘야 하고 정부는 그런 시도들을 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상당한 재정 투입이 반드시 결부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