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권침해 심각 속 모범 사례 학교
- 전교생 33명, 교사 9명과 순회 교사까지 합하면 일대일 교육 가능
- 친구 같은 선생님과 ‘소통과 공감’
무섭게 다가온 인구절벽, 학령인구가 줄어들며 전국의 초등학교 5곳 중 1곳은 학생 6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이다. 초등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규모 학교가 늘어나며 중 고등학교도 줄어들고 있다. 특히 농산어촌의 학교들은 이웃 학교들을 통합해 나가고 있지만 급격히 줄어드는 학생 수로 대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작은 학교에서 큰 꿈을 키우고 있는 전남 영광군에 소재한 영광군남중학교를 찾았다. 전교생 33명의 학생들은 저마다의 꿈을 키우고 있다. 9명의 선생님들은 의기투합해 제자들의 꿈을 구체화하고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핀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모두 순수해요. 도시 아이들처럼 사고를 치거나 몰려다니지도 않고요...” 경기도 양주 신도시에서 살다가 부모님이 귀농하면서 영광군에서 살게 된 2학년 김상우(15) 군은 말한다. “도시 친구들처럼 밤늦게까지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되요. 부족한 과목은 방과 후에 선생님들이 매일 보충해 줘요, 그리고 그 이후는 자유시간”이라며 “도시에서는 애들이 선생님 보면 피하는 데 여기서는 선생님과 부모자식처럼 지내요”라며 만족해한다.
인구급감시대에 영광군은 영광스럽게도 전국에서 출생률 4년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스승의 날을 나흘 앞둔 11일 영광교육지청의 소개를 받아 학생 수가 조금씩 늘고 있는 군남중학교를 찾았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중2라는 말도 있지만 남녀공학인 영광군남중학교는 학생들끼리는 형제자매처럼, 선생님과는 부모자식처럼 지내고 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학생과 선생님들은 삼삼오오 넓은 운동장 트랙을 돌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선생님과 손잡고 걷는 친구도 있고, 서로 장난치며 걷는 친구도 보인다.
“중전마마 납시오”
뒤늦게 이수정 교무부장이 식사를 마치고 운동장에 나서자 학생들이 일제히 달려가 넙죽 절을 하며 트랙으로 선생님을 안내한다. 이 후 선생님과 학생들은 격의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사제동행 시간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 시작해 올해로 3년 째 지속되는 사제동행 걷기는 건강증진 뿐 아니라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호흡하며 자연스럽게 상담도 진행된다. 학생들은 친구같이 대해주는 선생님에게 편안하게 자신의 속내까지 이야기 한다. 선생님도 학생들도 즐겁게 참여하며 만족도도 높다. 교권침해가 심각하고 일부 문제학생들로 인해 선생님의 자존감이 바닥난 요즘시대 보기 드문 모습이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진심으로 대해주는 선생님에게 어리광도 부려보고 철없는 행동도 하지만 스승의 대한 존경의 눈빛 역시 가득하다.
박철규(60) 교장 선생님은 “우리 학교는 즐거운 배움으로 행복한 삶의 개척자인 꿈을 찾아가는 학생들과, 열정과 전문성으로 꿈을 심는 조력자로 가르침이 보람되는 교사가 함께 존중과 배려로 소통하는 모두가 행복한 학교”라면서 “그래서 학교의 슬로건도 “잘 노는 학생 배움도 즐기는 학생이고, 꿈과 지혜를 가꾸는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과학과 수학을 좋아한다는 학생회장 김대혁(15· 3학년)군은 “해가 진후 끝을 알 수 없는 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 찾기를 즐긴다”면서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더 열심히 공부해서 장래희망인 천문학자의 꿈을 이루겠다.”고 말한다.
한때는 학생수가 500여명이 넘을 정도의 큰 학교 교정을 교장선생님과 함께 둘러본 후 1학년 학생들과 조선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매간당 고택’으로 향했다. 조선 후기에 지어진 연안김씨 집성촌의 종가로 조선 후기 지방 상류 양반집의 규모와 배치를 알 수 있는 국가민속문화재 234호이다. 학생들은 교장선생님과 함께 정원을 비롯해 민속문화재 곳곳을 둘러보았다. 삼대에 걸친 큰 효자를 기리기 위한 삼효문을 비롯해 옛날식 변소와 아궁이에 불을 떼 물을 데워 쓰는 목욕통, 일제 강점기 공출에 대비해 곡식을 숨겨둔 비밀 창고 등 교장선생님의 상세하고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가 이어졌다.
선생님들과 비석치기 등 현장학습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후에는 학교 체육관에서 조촐한 스승의 날 기념식이 이어졌다. 영광 군남중학교는 사이좋게 1,2,3학년이 모두 11명씩이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학생들은 준비한 카네이션을 선생님에게 달아드리며 사제의 정을 나눴다.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꼬옥 안아주며 등을 두드려 준다. 몇몇 학생들과 선생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스승의 은혜를 합창하며 “선생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저희 담임이고 스승이어서 정말 행복해요!”말한다.
학교 수업을 마친 영광군남중학교 전교생은 우도농악 전수자로부터 우도농악을 사사한다. 주말부터 학교 인근에서 열리는 찰보리축제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연습하는 시간이다. 운동장에 모여 징, 북, 꽹과리, 나발, 깃대 등 채비를 챙겨 선생님들의 지도에 따라 사물 소리와 함께 행진하고 원을 그리며 연습에 열중한다. 농악공연을 통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 크고 작은 역할을 맡았지만 누구하나 빠지지 않는다. 모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보니 어느덧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연습이 끝난 학생들은 다시 운동장에 모였다. 선생님들과 함께 빅발리볼 게임도 즐기고 파란 하늘아래 학교건물을 배경으로 전교생이 단체 촬영에 나섰다. 교무부장 이수정 선생님은 “영광군남중학교 학생 모두는 저마다의 색깔과 품성을 가진 각각의 별이 되도록 교육받고 스스로를 채워나간다.”면서 “한 학생도 소외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고, 할 수 있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찾아 함께 혹은 스스로 몰입한다. 그것을 돕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인구감소로 지방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는 농촌의 학교는 더 어렵다. 학생들이 없고 투자가 힘들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적은 학생 수는 1:1교육이 가능하다. 군남중하교 역시 학생과 교사의 비율이 3:1이고, 행정실과 급식실 등 교육가족 전체로 보면 2:1이다. 한명의 선생님이 2~3명의 학생을 전적으로 잘 교육할 수 있다. 넓은 운동장과 다양한 특활교실 등으로 질 높은 교육과 현장 중심의 교육으로 꿈을 이룰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할 수 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서로 돕고 이해하는 건강한 시민 교육이 가능한 것이다.
박철규 교장은 “우리 학생들이 모든 교육활동의 중심에 있어야 하고,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으며 항상 자신이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면서 “‘잘 노는 학생...배움도 즐기는 학생’을 모토로 ‘찾아오고... 머무르고 싶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학교에서의 모든 일과를 마칠 무렵 교문 안으로 택시들이 들어온다. 전남도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에듀택시’이다. 저출생과 광역도시 집중화 문제가 겹치며 문을 닫는 학교는 계속늘어나자 전남도교육청은 전체 학생수가 60명 이하이거나 섬지역 초중고등학교, 원도심 학교 등을 ‘작은 학교’로 지정, 공동학구제를 운영하거나 통학불편 해소를 위한 ‘에듀 버스’ 및 ‘에듀 택시’등을 통해 농·산·어촌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에게 내일은 더 큰 꿈을 가지고 힘찬 발걸음으로 등교하길 선생님들은 바란다.
전남 영광=글·사진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