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 준비하시고”… ‘속도·형식 모두 엉망’ 재난문자 문제없나

“대비 준비하시고”… ‘속도·형식 모두 엉망’ 재난문자 문제없나

재난안전 전문가 “불필요한 재난문자 인식 위험”

기사승인 2023-05-31 14:28:12
31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갑작스럽게 울린 경보음을 듣고 휴대전화 위급 재난문자를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발사하면서 31일 이른 아침부터 서울 시민들에게 ‘대피 준비를 하라’는 경계경보가 떨어졌다. 여기에 20여분 만에 행정안전부가 ‘오발령’이라는 위급 재난문자를 보내면서 시민들의 혼란은 가중됐다. 특히 두 메시지에는 어떠한 이유로 대피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등의 내용이 담기지 않아 ‘알맹이 빠진 위급 재난문자’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서울시는 이날 오전 6시41분쯤 위급 재난문자를 통해 “오늘 6시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보냈다. 이에 앞서 오전 서울 일부 지역에는 경계경보 사이렌과 함께 대피 안내 방송도 나왔다. 경계경보는 적의 지상공격과 침투가 예상되거나 적의 항공기나 유도탄에 의한 공격이 예상될 때 발령된다. 하지만 위급 재난문자에는 북한의 우주발사체 등 경계경보가 발령된 이유가 담겨있지 않았다.

20여분 뒤 행정안전부는 위급 재난문자를 다시 보내 “서울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린다”고 정정했다.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확인하려는 시민들이 포털사이트로 몰리면서 대표 포털인 네이버까지 트래픽 폭주로 한때 접속 장애를 일으켰다. 대피 매뉴얼과 대피소를 찾을 수 있는 국민재난안전포털도 일시적으로 마비됐다. 

동시에 일본의 재난 메시지가 주목받았다. 일본 전국순시경보시스템(J-ALERT)은 북한이 이날 우주발사체로 주장하는 물체를 발사한 지 1분 만인 이날 오전 6시30분쯤 ‘미사일 발사. 미사일 발사. 북조선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 안 또는 지하로 대피하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 위급 재난문자보다 약 11분 빨랐다. 짧은 메시지에 경보 발령 이유와 대피 장소를 간략히 담았다.

위급 재난문자. 

잇단 위급 재난문자에 잠에서 깬 시민들은 불안감과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모닝콜 역할밖에 못한 무의미한 위급 재난문자였다는 평가가 많았다.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 박모(42)씨는 “전쟁이 난 줄 알았다”라며 “경보 이유도 없이 대피하라고만 하니 답답했다. 인터넷까지 안 돼서 정말 식겁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아파트에서 안내 방송이 나오고 난리였다. 일단 지하주차장으로 대피한 일부 주민 중에는 생존 가방을 챙긴 분도 있다더라”라며 “‘오발령’이라니 다행이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려주지 않아 화가 났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38)씨는 “위급 재난문자 자체가 재난이었다”며 “뭐 때문에 재난 상황이 발생한 건지, 어떻게 움직이라는 건지 내용도 없이 공포감만 조성했다”고 지적했다. 출근 중이었다는 임모(60)씨는 “대피하라는 재난 문자가 왔지만, 네이버 뉴스는 먹통이어서 순간 당황했다”고 했다.

알맹이 없는 재난문자에 대한 지적은 이전에도 있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던 당시, 주요 내용 없는 재난문자가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면서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재난문자는 국내 이동통신 3사의 기지국을 통해 전송되며, 기지국에 연결된 모든 휴대전화로 발송한다. 최대 157자까지 문자 전송이 가능하다.

익명을 요구한 재난안전 전문가 A씨는 이날 전송된 위급 재난문자에 대해 “실수가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재난문자엔 육하원칙이 권장사항이지만, 시급한 사안에 ‘어떻게 작성해야 한다’고 정해진 건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재난문자를 남용하지 않고 정말 위급할 때 사용해야 한다는 것에 행안부도 공감하고 있다면서 “재난문자를 남발하면 나중에 시민들이 이를 믿지 않고 무시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재난문자를 불필요한 문자로 인식하고 메시지를 보지 않게 됐을 때 더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A씨는 과거 코로나19 당시에도 재난문자 논란이 있었던 것을 언급하면서 “이번에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다. 재난문자 내용 구성을 ‘어떻게 하라’고 정한 지침이 없기 때문”이라며 “좀 더 신중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라는 식의 지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우리 군은 이날 오전 6시29분쯤 북한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방향으로 발사된 우주발사체 1발을 포착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을 인용해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신형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에 탑재해 발사했다”며 “천리마 1형은 정상비행하던 중 1계단(단계) 분리 후 2계단 발동기(엔진)의 시동 비정상으로 추진력을 상실하면서 서해에 추락했다”고 발사 실패를 인정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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