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사실상 정치 행보에 나서고 있다. 장관은 정부 부처의 장으로 행정 각료 성격이 크나, 여권 내 차기 대선 1위 후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장관직을 이용하는 모양새다. 한 장관의 이러한 태도에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한동훈 장관은 12일 국회 본회의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에 앞선 제안 설명에서 다소 정치적인 뉘앙스의 발언을 쏟아냈다.
한 장관은 “돈봉투를 받은 것으로 지목되는 약 20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여기 있다. 표결에도 참여한다. 그 20명의 표는 ‘캐스팅보트’가 될 것”이라며 “돈봉투를 돌린 혐의를 받는 사람들의 체포 여부를 돈봉투 받은 혐의를 받는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은 고성을 치며 반발했다. 체포동의안 표결에 참석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여긴다는 사실에 반박한 것이다.
특히 한 장관의 발언은 이날 표결에 적잖은 영향을 줬다는 게 중론이다. 애초 민주당 내에서는 윤관석·이성만 의원 중 한 명은 부결, 또 다른 한 명은 가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굳어지고 있었지만, 한 장관의 정치적 도발에 따라 이탈표가 발생해 두 의원 모두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다.
한 장관의 과한 발언 모습은 역대 법무부 장관들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난다. 과거 장관들은 통상 짧은 시간 내 체포동의안 제안의 이유를 설명하고, 구속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정도였는데 한 장관은 취임 이후 구체적인 범죄 혐의가 연상되는 말을 쏟아내면서 매번 체포동의안 제안 때마다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해 12월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 제안 당시에는 ‘부스럭거리는 돈봉투 소리가 녹음돼 있다’라는 다소 과한 제안 설명으로 뭇매를 맞기도 했다.
다소 정치적이고 도발적인 한 장관의 언행은 의도된 것이란 분석이다. 여권 차기 대선 후보 1위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 현안과 관련해서는 특별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자기 홍보를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한 장관이 본분을 망각하고 자기 정치에 매몰 중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13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제 역할을 한다기보다 자기 정치 행위에 집중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어떻게 말하면 언론과 국민의 주목을 받을지 고민하는 듯하다. 법무부 장관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날 발언만 보더라도 아직 검찰 조사 수준에서도 20명 의원이 특정되지도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는데 마치 범죄자인 것처럼 연상되도록 말해 법리를 심각하게 왜곡했다”며 “일부 발언은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할 만할 수준이다. 민주당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 인권 침해 행위다”고 부연했다.
한 장관의 다소 튀는 언행에 여당 내에서도 조심스러우나 불만의 모습이 감지된다. 범죄 협의가 있는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제안은 합당하나 굳이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는 발언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한 장관이 독보적인 여권 내 차기 대선 1위 후보라는 점에서 견제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쿠키뉴스에 “전날 한 장관의 발언은 장관의 본분을 벗어난 것이다. 사실상 정치인의 정치 행위와 다름이 없다”며 “거대 야당에 맞서 최전선에서 싸우는 여권 1위 후보라는 이미지를 굳히는 데 법무부 장관직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국민적 시선에서는 이미 (한 장관의) 전략이 다 간파됐다는 것”이라며 “본인의 이미지를 한 단계 더 올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