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산책길에 '인간 쓰레기...'? "애들아 참아"

엄마의 산책길에 '인간 쓰레기...'? "애들아 참아"

[사랑한다는 걸 잊지마-아동청소년 그룹홈 아홉 자녀 엄마의 '직진'](3)
엄마의 산책길에 모두 뛰쳐 나온 아이들...도로 위 쓰레기를 대하더니...

기사승인 2023-06-21 08:50:06
에세이스트 전성옥. '그룹홈'의 아홉 자녀 엄마이기도 하다. 

전성옥

1971년 전북 고창 출생. 현재는 전남 영광에서 9명의 자녀를 양육하는 '아동청소년 그룹홈' 가정의 엄마다. 여섯 살 연하 남편 김양근과 농사를 지으며 단란한 가정을 이끌고 있다. 김양근은 청소년기 부모를 잃고 세 여동생과 영광의 한 보육시설에서 성장했는데 20대때 이 시설에 봉사자로 서울에서 자주 내려왔던 '회사원 누나' 전성옥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이들의 얘기는 2017년 KBS TV '인간극장'에 소개되기도 했다.

전성옥 부부는 대학생 아들 태찬(19), 고교 2년생 딸 태희(17) 등 1남 1녀를 두었다. 이 자녀들이 어렸을 때 "어려운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는 남편을 뜻에 동의해 서울 생활을 접고 영광에 내려와 그룹홈을 열었다. 이때 셋째 김태호(11)를 입양했다. 그 후 여섯 명의 딸 김초록(가명 · 19 · 대학생) 한가은(가명 · 이하 가명 · 18 · 특수학교 학생) 김현지(14 · 중학교 2년) 오소영(13 · 중학교 1년) 유민지(12 · 초교 6년) 장해지(9 · 초교 3년) 등과 함께 '다둥이 가정'을 꾸렸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전성옥은 귀농 후에도 문학반 수업을 들을 만큼 문학적 자질이 뛰어나다. 아이들과 함께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가장 즐겁게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걸 잊지마'는 혈연 중심의 가족구성원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연재 칼럼이다.
멀리 아이들과 동네 메타세콰이어길을 산책하는 가족. 사진=전성옥 제공


엄마의 산책길에 환경보호 포스터를 내건 아이들

산책을 좋아하는 엄마는 메타세콰이어길을 사랑한다. 사계가 모두 아름다운 S자 산책길. 우리 아이들만큼이나 변화무쌍한 풍경을 보여주는 길이다.

이른 봄이면 연초록 잎을 내놓으며 봄을 탐색한다. 시간이 지나면 초록은 짙은 배경으로 그늘을 만든다. 햇살은 그늘 아래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산책길 아스팔트는 과연 피카소가 된다.

그 길을 걷는 건 행복이다. 여름이 자리를 내 주고 나면 나무는 카멜레온이 되어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갈색으로 천천히 물들다 어느날은 진갈색의 풍경으로 유럽 거리 느낌을 보여준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 찬바람 불고 낙엽이 할 일을 마치고 나면 하얀 송이 눈이 내려와 나무를 옷 입혀 준다. 겨울왕국의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풍경. 우리집 산책길이다. 참 예쁜 동네에 살고 있다.
초가을 메타세콰이어길과 불갑호수. 사진=전성옥 제공

시간이 한가한 토요일 오후는 나른하다.

“얘들아, 엄마 산책 갈 건데 같이 갈사람?”

아이들은 놀고 있던 물건을 집어던지고 환호성이다.

“엄마, 저도 갈래요. 저도요,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

심심하던 아이들은 엄마의 한마디에 모두 뛰쳐나온다. 조용히 한 둘만 데리고 가려던 계획을 변경 모두를 데리고 산책길에 나섰다.
메타세콰이어길의 겨울. 사진=전성옥 제공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엄마 손을 내가 잡고 니가 잡고 왼편에 한 짝 오른편에 한 짝 나머지는 앞뒤로. 동네가 소란스럽다.

아이들도 느낀다. 이 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함께 걷다보면 마음이 상쾌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걸. 메타세콰이어 앞쪽으로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넓은 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그 호숫가를 배경으로 쭉 늘어선 예쁜 나무들 사이를 끼고 돌면 행복이 졸졸 따라올 수밖에 없다.

엄마의 생각이 먼저였을까, 아이들의 생각이 먼저였을까, 누구의 의견이 먼저였는지 알 수 없다. 그냥 걷다가 나온 말이다.
'지구가 아파요'. 메타세콰이어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그린 '캠페인 포스터'. 사진=전성옥 제공 

이렇게 예쁜 길바닥에 던져진 쓰레기를 발견한 우리 중 누군가가 말했을 것이다.

“쓰레기를 주워요.”

와우! 얼마나 멋진 일인가 쓰레기를 줍는다는 생각을 하다니.

그날 이후로 우리의 산책길을 함께 나서는 손님 바로 쓰레기 봉지. 걷다가 줍다가 놀다가 다시 뛰다가 발견된 쓰레기를 줍고 또 놀고 이야기 하고 달리다 보이는 담배꽁초를 줍고 음료수 캔을 줍고. 줍다 보면 별별 쓰레기가 눈에 띤다.

“엄마, 도대체 이건 뭐예요? 왜 이런 걸 여기다 버리는 거예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자'. 메타세콰이어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그린 '캠페인 포스터'. 사진=전성옥 제공 

배달음식을 먹었는지 플라스틱 용기가 버려져 있는걸 보고 막내아이가 짜증 섞어가며 뱉어낸 말이다. 자동차로 달리며 먹던 음식을 창문을 열고 버리고 달아났음이 분명하다. 어디 그 뿐인가. 별 희한한 쓰레기들이 길바닥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냥 걸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봉지를 가지고 쓰레기를 주우며 걷다보니 보이게 된 것이다.

주말 오후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신나는 놀이를 또 발견한 것이다. 같이 걷고 같이 줍고 같이 놀고. 그리고 같이 뿌듯하고 행복하다.

쓰레기를 줍다 보면 거리마다 쓰레기가 눈에 띠기 마련. 아이들은 어디를 가든 쓰레기를 본다.

“엄마, 저기 좀 보세요. 저기도 쓰레기가 많아요.”
'인간 쓰레기를 버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메타세콰이어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그린 '캠페인 포스터'. 사진=전성옥 제공 

아름다운 길, 우리 동네 산책길. 시간이 지나자 점점 쓰레기의 양이 줄어들었다. 아이들은 그것도 금방 눈치 챈다.

“엄마, 이제 쓰레기가 많이 없어요. 우리가 다 주워버렸어요.”

그러면 그 다음의 일은 무엇인가? 바로 캠페인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제안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는 내용의 그림을 그려서 길 가장자리에 붙여놓기로.
'쓰레기를 버리면 더러운 동네'. 메타세콰이어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그린 '캠페인 포스터'. 사진=전성옥 제공 

또 신나는 아이들. 각자 생각을 그림으로 옮겨 놓으니 정말 신선하다. 그림을 완성한 후 아이들과 함께 길가 나무에 묶어 두었다. 그림을 보고도 쓰레기를 버릴 생각을 하면 그 사람은 진짜 구제불능의 사람이라고 단정해 버리자고 말했다.

'우리 동네를 사랑하는 아이들'이라고 현수막이라도 하나 붙여놓자고 말하며 다시 행복하다.


전정희 기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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