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방영한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는 외부에 나갈 때 헤드폰을 착용하고 다녔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어 자신의 예민한 청각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새로운 채널인데도 시청률 17.5%(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하는 등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며 ‘우영우 헤드폰’ 역시 함께 인기를 끌었다.
이어폰 대신 헤드폰을 찾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소니코리아는 지난해 1~8월 한국 무선 헤드폰 시장이 전년(2021년) 대비 176%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중 2030세대 구매 비율은 46%에서 82%로 급증했다.
헤드폰 유행 이면에는 Y2K(2000년대)와 레트로 열풍이 있다. 지난해 Y2K 스타일이 패션계 유행한 뒤 전자기기까지 유행이 번졌다. 음악 감상 외에도 밖에서 헤드폰을 착용해 주위 소음을 차단하고, 목에 걸치는 등 패션 장신구로도 사용한다. 헤드폰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꾸미는 ‘헤꾸’도 유행이다.
최근 헤드폰 유행에 대해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젊은 소비자들의 특징이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며 “요즘 청년들은 새로 나오는 세련된 것보다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한 과거의 투박하고 낯선 물건을 보며 새로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만의 공간 구축,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의 노이즈캔슬링 기능은 청년들이 선호하는 기능이다. 주변 소음을 차단, 음악에 집중하게 해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은희 교수는 “청년들이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통해 군중 속 나만의 공간을 창출하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라고 분석했다.
평소 무선 이어폰을 쓰던 A(20대)씨가 헤드폰을 구매한 이유도 노이즈 캔슬링 때문이다. A씨는 “보다 완전한 노이즈캔슬링을 위해 무선 이어폰 대신 헤드폰을 샀다”라며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헤드폰을 사용한다”라고 말했다. B(20대)씨도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사용하면 주변 소음이 차단돼 음악이나 영상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라고 설명했다.
일부 청년들은 혼자인 느낌을 내기 위해 헤드폰의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적극 활용한다. 평소 혼자만의 공간을 선호한다는 유모(31‧여‧직장인)씨는 “집에서도 소음이 있으면 헤드폰을 낀다”며 “헤드폰을 사용하면 소음을 차단해 듣고 싶지 않은 소리에 신경을 덜 쓸 수 있어 좋다”라고 했다.
노이즈캔슬링 기능은 지난 1980년대 조종사의 청력을 보호하기 위해 군(軍)용 헤드셋으로 개발됐다. 노이즈캔슬링 시장은 앞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얼라이드마켓리서치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어폰의 세계 시장 규모는 2021년 131억달러(약 17조2000억원)에서 앞으로 연간 13.2%씩 커져 2031년에는 454억달러(약 59조7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일부 청년들에게 헤드폰은 단순한 음향기기를 넘어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다. 유민울(24‧여‧대학생)씨는 “힙한 코디를 연출하기 위해 헤드폰을 구매했다”라고 말했다. 유씨는 “평소 입던 옷에 헤드폰만 써도 코디가 완성돼 활용도가 좋다”라고 설명했다.
조은영(21‧여‧대학생)씨 역시 선선한 날씨에 헤드폰을 패션 코디로 이용한다. 조씨는 “주로 카고바지나 청치마, 박시티에 청바지 등 캐주얼한 옷을 입을 때 헤드폰을 매치하면 힙한 느낌이 난다”라고 덧붙였다.
패션업계에서도 헤드폰 코디는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에이블리는 목에 걸치는 헤드폰 코디가 급부상한 점을 언급하며, 지난 1~2월 음향기기 카테고리 거래액이 전년보다 230% 올랐다고 밝혔다.
청년들은 모자 위에 헤드폰을 쓰거나, 목에 거는 등 헤드폰 코디 방법을 SNS로 공유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헤드폰코디’를 검색하면 500개 이상의 글이 나온다. ‘헤드폰 코디 모음집’ 게시글은 1500회가 넘는 좋아요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나만의 헤드폰 꾸미기
헤드폰은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도구이기도 하다. 다이어리나 휴대폰을 스티커로 꾸미는 ‘다꾸’, ‘폰꾸’에 이어 ‘헤꾸(헤드폰 꾸미기)’도 유행이다. 에이블리에 따르면 고객 검색량 빅데이터 분석 결과, 지난 1~2월 기준 헤드폰 상품의 인기와 함께 ‘헤드폰 케이스’(1380%), ‘헤드폰 거치대’(630%) 등 관련 소품 검색량도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조은영씨는 “자국이 남지 않는 리유저블 스티커를 활용해 헤꾸를 해봤다”하며 “헤드폰 이전에 쓰던 무선 이어폰도 스티커나 케이스로 꾸미고 다녔다. 그 기억을 살려 헤드폰에도 스티커를 붙였다”라고 했다.
평소 좋아하는 콘셉트로 헤드폰을 꾸몄다는 B씨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B씨는 “처음엔 스티커 한두 개로 꾸미기 시작하다가, 지금은 스티커 15장을 붙였다”라며 “내 취향에 맞게 꾸며서인지 헤드폰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라고 설명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