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장마 아니고 우기”… 폭우 대책도 바뀌어야

이젠 “장마 아니고 우기”… 폭우 대책도 바뀌어야

호우 사망·실종 12년만 최대
기상청, 장마 대신 우기 명칭 변경 검토

기사승인 2023-07-18 06:05:02
지난 16일 오전 청주시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에서 군과 소방당국이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집중호우로 경북과 충북을 중심으로 산사태와 지하차도 침수 등 인명피해가 커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장마철 강수량은 줄었지만 시간당 30㎜ 이상 집중호우가 증가하며, 기상학계에서는 ‘장마’에서 ‘우기(雨期)’로 명칭 변경을 검토 중이다.

17일 오후 11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집계에 따르면 이번 집중호우로 세종 1명, 충북 17명(오송 14명), 충남 4명, 경북 19명 등 총 41명이 사망했다. 실종자는 총 9명, 부상자는 총 35명으로 집계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오후 8시10분쯤 충북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 사망자 시신 1구가 추가 수습되며 오후 6시 집계보다 1명 늘었다. 실종 신고된 12명 중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던 마지막 1명의 시신이 발견되며 오송 지하차도 내부수색은 이날 밤 9시7분 종료됐다. 

올해 호우로 발생한 사망·실종자수는 12년 만에 가장 많은 인원이 될 전망이다. 54일로 최장 장마 기록을 세운 2020년 호우·태풍 사망·실종자 수는 46명이었다. 2011년 호우·태풍으로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등으로 78명이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 최대 규모다.

이번 호우 피해는 기후 변화로 발생한 ‘물 폭탄’이 원인으로 꼽혔다. 특히 최악의 수해 지역으로 꼽히는 경북과 충북은 한 달간 내릴 비가 3일 만에 쏟아졌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3일부터 16일 오후 4시까지 충청·전북·경북권에 300~570㎜의 비가 쏟아졌다. 평년 장마철 전체 강수량인 350㎜를 웃돈 수준이다.

특히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가 발생한 충북 청주시에는 지난 13일부터 16일 오후 2시까지 474㎜의 폭우가 내렸다. 지난 30년 청주에 내린 한 해 평균 장맛비 344㎜보다 많은 양이다. 사흘 남짓한 기간에 평년 장마철보다 38%가량 많은 비가 쏟아지며, 하천과 배수 시설이 감당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장마백서 2022’. 기상청

장마 대신 1·2차 우기… 일본에선 재난

“이쯤 되면 장마 아니고 우기 아닌가요?” 17일 SNS에는 주간 날씨 캡처와 함께 장마가 아니라 우기인지 묻는 글들이 쏟아졌다. 주기적으로 내리는 장맛비 대신 갑작스러운 폭우와 폭염이 반복되는 열대 지역 ‘스콜(열대성 소나기)’처럼 비가 내리기 때문이다.

한 네티즌은 “몇 년 전부터 장마 대신 우기라고 장난처럼 말해왔는데, 진짜 우기라는 단어가 논의 중이라는 사실이 조금 슬프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도 “장마가 우기로 변하고 있어 호우 인재 피해도 계속 발생할 것 같다”라며 “호우로 농작물도 피해를 입어 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랜 기간 지속되는 비를 일컫는 장마가 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기상청이 발간한 ‘장마백서 2022’에 따르면 30㎜ 이상 쏟아지는 집중호우 빈도가 1980~1990년 대비 최근 20년간 20% 이상 증가했다. 또 장마 기간이 지나서 비가 내리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기상청은 7㎜ 넘는 비가 올 때를 지금의 장마철인 ‘1차 우기’, 한동안 비가 그쳤다가 다시 7㎜ 이상 내리는 기간을 ‘2차 우기’로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충북 등 지역에서 발생한 집중호우는 ‘선상(線狀) 강수대’ 영향이다. 선상 강수대는 정체전선처럼 긴 형태로 이어진 적란운을 뜻한다. 북쪽에서 침강해 내려오는 차고 건조한 공기와 남동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의 고온다습한 공기가 부딪치며 생긴다. 좁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비가 쏟아지는 특징이 있다. 일본에선 선상 강수대를 지진이나 태풍 같은 재난으로 규정하고 있다.

선상 강수대로 집중호우가 내리는 현상이 갑자기 국내에 발생한 건 아니다. 우진규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2000년대 초반에도 집중호우는 있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올해 충청과 전북 등에서 발생한 집중호우에 대해 “북서쪽 티벳고기압과 남쪽에 북태평양고기압이 만나 장마전선이 만들어진다”라며 “올해는 충돌 강도가 평소보다 강하게 발생했다”라고 설명했다.

대응 방식도 변화해야… 주민 참여 필요

우기의 영향을 앞으로도 계속된다. 더 심각한 집중호우가 내릴 가능성도 있다.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원래 장맛비가 본격적으로 내리는 건 7월13일쯤”이라며 “이 기간 전후로 오는 비는 장마전선보다 대기 불안성의 영향이 크다”라고 전했다. 이어 “지난해 8월에도 장마가 끝나고 많은 비가 왔다”라며 “기후 변화로 선상 강수대가 계속 생겨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앞으로는 장맛비가 아닌 집중호우가 올 것을 예상해 홍수와 산사태 등 재난 대응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김 교수는 “기후 위기로 전 세계 산악지대 등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라며 “이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특성의 비다. 과거 경험에 기반해 대책을 세우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산사태 전문가인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도 기후 변화에 맞춰 정부의 대응체계를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현재 정부의 재난 관련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라며 “재난은 이중·삼중으로 대비해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역 사정은 거주 중인 지역 주민들이 제일 잘 안다”라며 “재난을 대비하는 콘트롤 타워에 주민들도 참여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집중호우 대응이 잘 작동되지 않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구축은 잘돼 있지만, 작동이 잘 안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산사태와 오송 지하차도 사고처럼 갑작스럽게 지역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자치단체에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부여한 응급조치, 통행금지, 교통통제, 대피명령 등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들 또한 폭우 때 외출하지 않고 강가를 피하는 등 국민 행동 요령을 준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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