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전국적인 집중호우 때도 국가 재난 메뉴얼에 따라 중대본이 가동됐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포함해 40여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국가 재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됐는지 의구심이 든다.
현대 국가 출현 이후 각종 위기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라는 관점이 점차 발전됐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전문적으로 비상 관리 책무를 잘 이행하기 위한 재난관리 행정시스템을 체계화했다. 우리 정부도 재난 관리를 1990년대 이후 체계화하기 시작해 관련법을 제정 중대본 설치가 의무화됐다.
‘중대본’은 중앙대책본부의 줄임말이다. 설치 근거는 재난 및 안전관리법(이하 ‘재난관리법’)에 있다. 재난관리법 제4조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국가와 지방 자치단체(지방정부)에게 부여하고 있다. 대통령령에 따라 행안부에 중대본을 두도록 하고 있는데 이 기구가 흔히 재난 상황 때마다 등장하는 중대본이다.
중대본과 비슷한 중수본(중앙사고수습본부)도 있다. 두 기구는 명칭은 비슷하지만 약간 성격이 다르다. 중대본은 행정안전부 내 대응 조직이고 중수본은 행안부를 제외한 각 부처 기구로 알려졌지만, 정확히는 위기 경보 수준에 따라 구분된다.
재난관리법에 근거한 위기관리 지침에 따라 위기 경보는 관심-주의-경계-심각 등 4단계로 구분된다. 보통 사회 재난의 경우에는 행안부를 제외한 각 소관 부처가 관심-주의-경계 단계까지 중수본을 꾸려 대응한다. 하지만 심각 단계가 되면 소관 부처의 관리 역량을 넘어서게 되고,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중대본이다. 통상 행안부 장관이 중대본부장을 주로 맡다 보니 행안부 내에 꾸리는 게 중대본, 다른 부처에 꾸리는 중수본이라고 알려졌지만, 정확히는 부처 구분이 아닌 위기 경보의 수준에 따라서 나뉜다.
중대본부장이 행정부 장관인 경우는 부처들의 협업이 쉽지 않은 부분이 있어 ‘중대 재난’의 경우에는 행안부 장관이 아닌 총리가 본부장을 하도록 법을 개정해 현재 운영 중이다. 코로나 방역 국면 당시 중수본은 보건복지부 산하에 설치됐었고, 중대본이 국무총리실 산하에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해가 된다.
국가 재난에 대비하는 ‘지대본’도 존재한다. 지역대책본부의 줄임말로 이 또한 재난관리법에 명시돼 있다. 감염병 유형을 제외한 대부분의 재난 사고는 지역 현장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일선과 가장 가까운 지대본의 초동 대응이 굉장히 중요하다.
재난 전문가들은 재난 대비 및 대응을 위해서는 지자체의 역할의 중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중앙 의존도가 좀 높은 편이다.
재난에 있어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함에도 메뉴얼상 위반사항이 없다며 주말 골프장 방문한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 홍준표 대구시장의 변명이 궁색해진다.
올해 5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국제연합 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 고위급 회의에서도 재난 대비에 있어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 현지화)’의 중요성이 굉장히 강조된 바 있다.
재난 안전 분야 전문가인 오윤경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9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재난 발생 후 나오는 대책들을 보면 보통 제도를 강화하고, 기술을 보급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이다. 이보다는 지역의 재난 대비 역량이 확충될 수 있는 지원 대책이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땜질식 제도 개선보다는 현행 재난 관리 제도가 잘 돌아가도록 점검하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오 선임연구위원은 “재난 관리와 관련된 제도가 오히려 너무 많다. 기존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은 채 사고가 날 때마다 덧대고 있다”며 “잘 돌아가지 않는 제도를 확인하고, 개선하는 게 더욱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부연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