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가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우려에 흔들리고 있다. 이에 당국은 PF 리스크가 시스템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시장 안정화 정책을 펼치는 상황. 다만 일각에서는 당국이 시장 충격을 우려해 부실 PF사업장 정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시장의 자정 기능이 오히려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는 증권업의 하반기 등급 전망을 ‘부정적’이라고 보고, 산업 전망 역시 ‘비우호적’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PF와 해외 대체투자 부실 위험이 커지면서 자산건전성 하락 우려가 높다는 이유에서다.
금융권 PF대출 잔액을 보면 3월말 기준 은행권이 41조7000억원으로 연체율은 0%대를 기록하고 있다. 증권업계는 잔액이 5조3000억원에 불과하지만 연체율이 15.88%에 달한다. 보험업계(43.9조) 연체율은 0.66%, 저축은행(10.1조)은 4.07%, 여신전문(26.1조)은 4.2%, 상호금융(4.5조)은 0.10% 수준이다. 부동산 호황기 증권업계가 고위험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결과 타 업권 대비 높은 연체율을 보이고 있다.
한기평은 하반기 다시 도래하는 대규모 브릿지대출 만기를 고려할 때 점진적이지만 꾸준하게 (증권업계의) 자산부실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신평도 자본 3조원 미만의 중소형 증권사의 올해 3월 기준 자기자본 대비 브릿지론 및 중·후순위 본 PF 대출 규모가 48% 수준에 달해 부담이 클 것으로 봤다. 특히 하이투자증권과 다올투자증권의 부실 리스크가 큰 것으로 꼽았다.
노재웅 한신평 실장은 17일 온라인 세미나에서 “올해 하반기 증권업계는 실적 가변성이 확대될 전망”이라며 “기업금융(IB) 부문에서 PF 신규 거래가 감소하고 브릿지론 차환에 난항을 겪는 등 실적이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증권업계는 최근 해외 대체 투자 부실 위험에도 시달리고 있다. 대형사의 자기자본 대비 해외 부동산 익스포저(위험 노출액) 비중은 24%, 중소형사는 11% 수준이다. 미래에셋증권과 하나증권, 메리츠증권, 대신증권 등이 자기자본 대비 익스포저 비율이 높은 증권사로 지목됐다. 실제 미래에셋증권을 증심으로 한국투자증권, 유진투자증권 등이 2019년 홍콩 빌딩을 담보로 빌려준 약 2800억원이 부동산 가격 하락과 금리 상승으로 현재 증발할 위기에 놓인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부동산을 중심으로 국내외 리스크가 확대되자 기존 사업의 부실화를 막기 위한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증권업계 IB 관계자는 “국내 PF 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며 “현재는 모든 신규 사업을 중단하고 기존 사업 관리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도 PF 리스크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PF 대주단 협약’을 재가동해 복잡한 권리관계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부실·부실우려 사업장이 다시 정상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동시에 사업장 정상화를 위해 지원펀드를 통해 신규 자금 지원도 제공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PF 시장 안정화를 위해 부실 사업장에 대한 조기 정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증권업계 IB 관계자는 “현재 당국의 대응은 사태를 해결하기 보다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문제가 터지지 않도록 시간을 끄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대응이 오히려 시장의 기능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실 사업장을 시장에 맡겨 빨리 정리하는 것이 PF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부실 사업장 정리로 시장에 돈이 돌고 새로운 사업의 기회가 생겨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