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도우미보다 더 급한 건요…” 맞벌이 부부 호소

“필리핀 도우미보다 더 급한 건요…” 맞벌이 부부 호소

필리핀 이모 100명 온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사업 추진
언어장벽·가격 부담에 실효성 논란
정치하는엄마들 “긴급돌봄서비스·육아휴직 활성화 필요”
고용노동부 “지속적으로 보완할 계획” 해명

기사승인 2023-08-02 06:00:02
저출산 현상이 심각한 가운데 워킹맘들은 아이 돌봄과 업무 병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맞벌이 부부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맞벌이 부부라고 해도 월 200만원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기엔 부담스럽죠. 육아를 맡겨 사고가 날 경우 외국인이라 책임을 묻기 어려울 것 같아요. 맞벌이 부부에겐 그보다 필요한 정책이 많은데, 수요자가 많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생후 28개월 쌍둥이 아들이 있다고 밝힌 최서연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1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털어놨다. 고용노동부가 추진할 예정인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을 두고 맞벌이 부부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31일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관련 공청회’에서 공개한 계획안에 따르면, 서울 지역을 대상으로 외국인 100여명을 시범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용자는 맞벌이 부부, 한부모, 임신부 등이다.

유력하게 거론되는 국가는 필리핀이다. 가사서비스 관련 자격증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를 우선 검토하고 있는데, 필리핀은 직업훈련원에서 6개월 훈련 후 수료증을 발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고용허가제(E-9) 인력으로 입국하면, 정부 인증기관이 채용하고 각 가정에 통근형으로 파견하는 방식이다. 서울시는 1억5000만원을 들여 외국인 도우미의 숙식·교통비를 지원할 방침이다.

더 저렴한 시급으로 가사도우미 고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월급은 국내 최저임금을 적용해 월 200만원 정도의 가격대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인 가사도우미(월 350~400만원대)나 중국 동포(월 250만원대) 보다 30% 가량 저렴한 수준이다.

정부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도입되면 저출산 원인으로 지목돼 왔던 ‘육아 부담’을 일부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성이 주로 맡고 있는 가사노동 부담을 줄여 경력 단절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취지도 있다. 

다만 수요자들은 외국인 도우미를 믿고 쓸 수 있을지 물음표를 띄운다. 월 200만원 내외의 비용이 들어가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가격과 관계없이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육아를 맡기기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아이를 가지면서 경력단절을 겪었다고 밝힌 배수민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경력단절이 된 엄마들의 자아실현을 위해선 일부 긍정적 계기로 작용할 순 있을 것 같다”면서도 “아이를 맡길 수 있을까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200만원이란 가격도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최서연 활동가도 “가사일을 도와주는 선에서 제도화된다면 편리할 순 있겠지만, 육아의 경우 외국인이 아이와 소통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 이용이 주저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들은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보다 지원이 절실한 제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긴급돌봄서비스, 육아휴직 제도의 활성화를 언급했다.

최 활동가는 “현재 긴급돌봄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지만, 절차가 번거로워 이용이 어려운 점이 있다”며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저녁 늦은 시간 급한 일이 생길 때, 갑자기 야근을 해야 할 때 등 긴급돌봄서비스가 탄력적으로 운영됐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육아휴직 제도가 있어도 회사 눈치 때문에 쓰기가 어려워 일을 그만뒀었다. 법이 있어도 현실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면서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게 하면 처벌 받는 게 아니라, 자동으로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등록되는 방안을 검토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도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이 맞벌이 부부의 육아 부담을 해소하기엔 부족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맞벌이 부부에게 필요한 건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경우 새벽시간에도 돌봄이 필요하다”며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그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요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누굴 위한 정책인지 모르겠다. 도입하기엔 아직 시기상조”라며 “현재 지원하고 있는 아이 긴급돌봄서비스를 어떻게 확대할지, 양육자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권혜원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도 “해외 사례를 살펴봐도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이 출산율 제고나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에 큰 효과가 없다”면서 “육아가 여성의 고용과 경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선 노동시간 단축, 육아휴직 활용률 제고 등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기 위한 논의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실효성 논란이 거세지자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1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국민적 관심이 큰 시범사업인 만큼 향후 다양한 현장의견을 수렴해 실질적 수요조사 등을 토대로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나가겠다”며 “향후 운영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보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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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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