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영상 공유? ‘모방 범죄’ 위험성에 PTSD 우려까지

범행 영상 공유? ‘모방 범죄’ 위험성에 PTSD 우려까지

기사승인 2023-08-09 06:00:32
지난3일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경기 분당구 서현역.   사진=임지혜 기자

“저도 유행에 참여해 봅니다. 3시부터 눈에 보이는 사람들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죽일 겁니다.”

지난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백화점에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 발생한 이후, 범죄 예고 글이 유행처럼 올라왔다. 한두 건이 아니었다. 범행 시간과 장소를 예고한 글 리스트와 검거현황이 각종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4일 오후 7시 X(옛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검색어 가장 상단엔 ‘칼부림 예고’가 올랐다.

지난달 21일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 직후 ‘범행 예고’ 글이 처음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후 지난 3일 경기 분당 서현역 사건 이후 급증해 8일 기준 194건까지 늘어났다. 두 사건 모두 사건 직후 모자이크 없는 실시간 영상과 혈흔 등이 담긴 현장 사진이 온라인을 통해 공유됐다는 특징이 있다.

유출된 범행 영상이 광범위하게 공유된 것이 모방 범죄를 일으켰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누리꾼은 “사건 영상이 무분별하고 과도하게 노출돼 신림역 사건에 대한 큰 관심과 모방 범죄에 대한 열망이 범죄 예고로 이어진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누리꾼도 “이런 일이 이슈화될수록 모방 범죄가 많아질 것 같다”라고 우려했다. “뉴스도 자세히 보도하면 안 된다. 영상 공유도 막아야 한다”라고 지적한 누리꾼도 있었다.

전문가들도 범행 영상이 모방 범죄 등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평소에 흉기 난동이나 살인 등 범죄에 생각과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전혀 영향이 없다”면서도 “이런 사건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거나 일상에서 불쾌한 감정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영상을 본 사람들에게 범죄 지식, 즉 ‘폭력 스크립트’가 생겨 행동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분석도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가 음식점에 가면 ‘자리에 앉는다-메뉴판을 보고 주문한다-음식을 먹는다-계산하고 나온다’는 일련의 과정이 사고에 형성돼 있다”라며 “영상을 보면 범죄에 대한 사고의 틀이 생겨 행동으로 옮기기 쉽다”라고 설명했다.

흉기난동이 예고된 지역과 목록이 정리된 사이트. 해당 사이트 캡처

원치 않게 범행 영상을 보고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는 시민들도 많다. 서현역 관련 영상을 반복해서 봤다는 이모(26‧직장인)씨는 “SNS에 접속할 때마다 영상이 떠서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영상을 본 뒤 지나다니는 사람들 손만 보고 작은 일에도 흠칫 놀라게 됐다”라며 “영상에서 사건이 벌어진 곳이 일상 공간이라 현실성이 크게 느껴졌다. 더 무서웠다”라고 밝혔다.

범행 영상 공유를 그만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서현역 사진이든, 영상이든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누리꾼도 “긴급 속보 및 실시간 트렌드로 서현역 관련 영상이 보도되고 있다”라며 “사건 피해자, 현장에 있는 사람에게 2차 가해밖에 되지 않는다. 또 불특정 다수에게 트라우마를 불러올 수 있으니 영상 공유에 주의해달라”라고 당부했다.

직접 범죄 사건을 겪지 않고 범행 영상만 접해도 PTSD를 겪을 수 있다. 한국심리학회와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이태원 참사 직후인 10월30일부터 11월26일까지 심리상담을 받은 221명 중 101명(46%)은 미디어 등을 통해 이태원 참사를 간접 목격한 이들이었다.

전문가들은 SNS를 통한 무분별한 범행 영상 공유에 대해 우려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6일 성명을 통해 “불특정 다수를 향한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많은 사람이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사회에 대한 안전감을 잃어버릴 수 있다”며 “자극적인 언론 보도나 현장 동영상, 유언비어에 반복 노출되면 간접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이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곽금주 교수도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PTSD를 겪을 수 있다”라며 “실제 지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사건과 관련 없는 한 여학생이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한 뒤 밤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한 경우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언론와 유튜브 역시 사건 보도에 주의해야 한다. 곽 교수는 “뉴스와 유튜브 등을 통해 사건 모습이 나오는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요즘 유튜버가 많아지며 평범한 일상으로는 관심을 끌 수 없는 이들이 사건 등이 발생하면 관련 영상과 사진을 올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 같은 현상이 시민들에게 불안감 조성을 가중시키고 있다”라고 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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