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사건 현장은 못 가요” 남겨진 신림동 사람들

“아직 사건 현장은 못 가요” 남겨진 신림동 사람들

기사승인 2023-08-30 06:05:02
28일 오전 지하철 2호선 신림역 4번 출구 앞 골목.   사진=이예솔 기자

칼부림 사건에 성폭행 살인 사건까지. 13일 간격으로 연이어 강력 사건이 벌어진 후, 서울 신림동에 사는 시민들의 일상이 달라졌다.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도 신림동은 여전히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자 직장이다. 신림동 인근 주민들은 “아주 불안하고 위축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서울 신림동에서 3년 가까이 살았다는 장모(28·남)씨는 요즘 집 밖에 나서길 주저하게 됐다. 최근 발생한 강력 사건들 때문에 불안감이 커져서다. 장씨는 “대로변이든, 쇼핑몰이든 언제 길을 가다가 칼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불안을 호소했다.

지난달 21일 신림역 인근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지 5주가 지났다. 28일 오전 10시 방문한 2호선 신림역 4번 출구 앞은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골목 입구엔 경찰차가 서 있었다. 경찰들은 수시로 나와 골목을 순찰했다. 거리는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고, 식당과 카페 안은 대부분 비어있었다. 골목 상인들은 당시 사건 얘기를 꺼내자 “떠올리기 어렵다”며 손사래를 쳤다.

28일 오전 지하철 2호선 신림역 4번 출구 앞 골목.   사진=이예솔 기자

거리에서 만난 사진작가 A(20대·남)씨는 신림동에 거주한 지 4년째다. 그는 최근 신림동 일대를 걷는 걸 피하려고 한다. A씨는 “지나가다가 눈이 마주쳐도 피한다. 의식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시민들도 이전과 다르게 보인다. 유동 인구도 많이 줄었고, 사람들이 거리 두기를 하는 것도 느껴진다. 그는 “예전엔 거리에서 눈을 마주치면 가볍게 피하는 정도였지만, 요즘엔 의식을 많이 한다”며 “예전엔 신림동 치안이 안 좋다는 얘기가 의아했는데, 이젠 나도 부정적인 시선을 갖게 됐다”고 털어놨다.

여전히 신림동에는 많은 사람이 산다. 지난해 2월부터 신림동에서 거주한 B(24·여)씨는 “범죄가 연달아 일어나 이사하기로 했다”라며 “이미 익숙해진 곳을 떠나는 것이기에 이사 결심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장모씨는 앞으로도 신림동에 거주할 계획이지만 원해서는 아니다. 장씨는 “올해 방이 계약 만료되지만, 신림동을 벗어날 수가 없다”라며 “서울에서 그나마 싼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8일 오후 서울 신림동 한 공원내 성폭행 살인 사건 현장 근처에 국화꽃이 놓여 있다.   사진=이예솔 기자

지난 17일 성폭행 살인 사건이 일어난 서울 신림동 한 공원 둘레길도 시민 발길이 뜸해졌다. 산책하기 좋아 평소에도 동네 주민들이 많이 찾는 이 둘레길은 앞서 칼부림 사건이 벌어진 골목과 버스로 20분 거리다. 28일 방문한 둘레길에선 시민들이 3~4명씩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임모(71·여)씨는 “전에는 혼자 등산로를 올랐지만, 이젠 대여섯 명은 돼야 오를 수 있다”며 “집도 가깝고 산책로도 좋아서 매일 온다. 하지만 아직 사건 현장 근처 등산로 쪽으로는 못 간다”고 말했다.

나무가 우거진 둘레길 등산로에는 인적이 거의 없었다. 간혹 마주치는 시민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경계했다. 20년째 매일 이 등산로를 이용한다는 김모(50·남)씨는 “사건 당일에도 범인이 잡혀가는 걸 두 눈으로 봤다”며 “나이 든 사람도 혼자 안 다닌다. 혼자 다니면 위험하니 꼭 동행하라”고 조언했다. 관리사무소 설치와 순찰 강화를 바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모(50대·여)씨는 “요즘엔 경찰이나 순찰대도 별로 없다”며 “(누군가가) 산으로 끌고 가지 못하게 울타리를 설치하고 관리사무소도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풀을 손으로 헤치며 진입한 현장 근처엔 국화꽃이 놓여 있었다. 시민들이 두고 간 손 편지도 나무에 걸려 있었다. 편지엔 “항상 행복하시길”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요”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사건이 발생한 현장 근처에 설치된 CCTV는 2대. 이마저도 시민 안전이 아닌 산불 감지를 위한 CCTV고, 풀숲에 가려져 시야 확보가 어려워 보였다. 등산로를 비롯한 공원 곳곳에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셈이다. 김씨는 “CCTV 하나에 설치 비용이 2000만원 정도로 안다. 그럼 몇 개나 설치할 수 있겠냐”며 “말이 등산로지 사실 이곳은 산이다. 한두 개 설치해서 방범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8일 오후 서울 신림동 한 공원 내 성폭행 살인 사건 현장 근처에 설치된 산불감지 CCTV.   사진=이예솔 기자

신림동 주민들의 불안이 높아지자, 서울 관악경찰서는 지난 21일부터 관악 치안 조기 안정화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관악 둘레길 산악 순찰대를 시범 운영한다고 밝혔다. 자율방범대와 함께 순찰 구간을 다시 짜는 등 관악산 일대 치안 강화 대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관악구청은 사건 발생 지역을 비롯한 취약지역에는 CCTV를 추가로 설치하고 특정 움직임을 감지하는 지능형 관제시스템도 확대하기로 했다.

한편 신림역 사건 가해자 조선은 지난달 21일 서울 신림역 근처 상가 골목에서 20대 남성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하고, 다른 30대 남성 3명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살인 사건 가해자 최윤종도 지난 25일 강간 등 살인 혐의로 구속 송치됐다. 최씨는 지난 17일 서울 신림동 한 공원 등산로에서 피해자를 무차별로 때리고 목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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