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역만리 강제이주 당한 홍범도 장군을 또 강제이전 시키려 합니까”
30일 오후 용산 전쟁기념관 앞 광장에서 열린 홍범도 흉상 이전 규탄집회에 참석한 노송달 대한고려인협회 회장의 눈물 섞인 말이다. 이날 집회를 위해 먼 걸음을 달려온 그는 대한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항일 투쟁한 홍범도 장군에게 조국이 더 이상의 굴욕을 줘서는 안 된다고 목 놓아 말했다.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으로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쓸쓸한 노후를 보내다가 타계한 그에게 조국이 봉환 2년 만에 또 다른 수모를 주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또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게 홍범도 장군은 자신들의 상징과 같은 존재인데 고국으로 돌아와서도 치욕스러운 수모를 겪는 모습이 고려인들에는 또 다른 상처를 남기고 있다며 반드시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을 막아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여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등 독립운동 단체들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추진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비 오는 궂은 날씨에도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민주당 의원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인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 전 의원 등 다수가 참석해 정부의 몰역사적인 행태를 규탄했다.
이들은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추진을 “역사 쿠데타”라고 규정했다. 흉상 이전 추진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했으며 국방부 장관·육사 교장의 파면도 촉구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가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있다”고 규탄했다. “독립전쟁 영웅에게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 씌워 역사에서 지워내려 한다”면서 “흉상 철거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더 이상 독립전쟁 영웅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라”고 소리 높였다.
특히 이들은 “흉상 철거 계획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치열하게 싸워온 대한독립군과 광복군을 국군의 뿌리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라며 정부의 왜곡된 인식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군 창설 이후의 역사만 기리겠다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도 부정하는 것이냐”며 “누구의 지시가 있었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조국의 품에 돌아온 지 2년 만에 다시 수모를 당하는 홍범도 장군의 모습을 보면서 고려인들의 가슴에도 큰 생채기가 나고 있다고도 전했다.
2021년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당시 현지를 찾아 동행했던 우원식 의원은 “당시 현지에서 만난 고려인들은 홍범도 장군의 조국 귀환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면서도 자신들의 상징이자 존경 대상이 떠난다는 사실에 섭섭한 마음을 보이기도 했다”며 “가서 잘 모시겠다고 했는데 2년 만에 이런 일이 생겨 너무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전 재산을 처분해 신흥무관학교 등을 설립한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 전 민주당 의원도 자리해 윤석열 정부의 몰역사적인 행태를 비판했다. 이 전 의원은 “처음 (육사 내 설치된 애국지사) 5분의 흉상을 전격적으로 철거하려다가 예상 밖의 큰 국민적 저항에 이전이 무산되면서 정부가 갈팡질팡한 것으로 보인다”며 “홍범도 장군과 나머지 4분을 갈라치기 하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친일파 중심의 군인들이 홍범도 장군 흉상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마음을 졸이다가 억눌린 감정이 적개심으로 돌아선 것 아닌가 싶다”고 부연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