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동료 선생님의 안타까운 소식에 마냥 슬펐습니다. 슬픈 감정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결심으로, 또 바뀌어야 한다는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참는 것도 한계였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경기 광주시 12년차 초등교사 A씨)
지난 7월18일 서이초 교사 사망한 지 49일. 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엔 49재를 추모하려는 교사들의 검은 물결이 다시 한번 밀려들었다.
살아남은 교사들은 49일 동안 서로를 위로했다. 7주간 매주 토요일 자발적으로 모인 교사들의 수는 지난 2일 30만 명까지 불어났다. 교사들의 생존을 위해 교육부, 국회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교육부의 파면‧해임 등 권고에도 교사들은 ‘공교육 정상화의 날’로 지정한 4일 연가와 병가를 사용해 동료 교사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4일 오전부터 서이초 앞엔 다시 수십개의 화환과 추모하러 모인 교사들의 줄이 늘어섰다. 경기 광주시에서 온 12년차 초등교사 A씨는 서이초 교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난 7월20일에도, 그리고 이날도 서이초 앞에 줄을 섰다. A씨는 “지난 7월 소식을 접한 뒤 슬픈 마음에 서이초를 방문했다”라며 “지금은 변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분노와 좌절 등 감정이 들어 변화를 위해 방문했다”라고 설명했다.
경기도에서 온 8년차 교사 B씨도 비슷했다. 그는 “속상하고 슬펐던 감정이 가장 컸다”라며 지난 7월을 회상했다. 이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추모하기 위한 행동도 불법으로 치부하는 교육부의 행동을 보다 보니 분통이 터진다”라고 했다.
교사들이 분노하는 원인은 49일 동안 바뀌지 않은 학교 현장에 있다. 강원 인제군에서 온 16년차 초등교사 C씨는 “49일이 지날 동안 바뀐 게 하나도 없다”며 “진상 규명조차 안 됐다”라며 분노했다. 강원 인제군에서 온 3년차 교사 D씨도 “49일이 지났는데도 아무 변화 없이 슬픔을 안고 수업을 계속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고 화가 난다”라고 밝혔다. 10년차 교사 하모씨는 “남의 일이 아니라 언제나 같은 상황에 처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다”라고 밝혔다.
교사들은 변화 없는 학교 현장의 분위기를 매일 마주하고 있다. 교사 E씨는 “지금도 학부모 민원이나 학생 관리 등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고 병가 중인 동료 교사들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인제군에서 온 C씨도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 관리자들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학폭, 문제 행동 등의 문제를 교사 혼자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계속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동료 교사가 나올까 봐 두렵다”라고 눈물을 보였다.
교사들도 그동안 손 놓고 가만히 있던 건 아니다. 안전한 교육환경을 위해 자진해서 현장정책TF를 꾸리고 설문조사를 진행해 현장에 필요한 정책까지 제안했다. 현장정책TF의 설문조사에 참여한 D씨는 “최소 1~2시간을 읽어야 대답할 수 있는 질문에 3만8000여명의 교원이 답했고 그 내용을 교육부 간담회에 전달했다”라고 했다. 이어 “교사들이 뭘 원하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라며 “오히려 현장 교사들이 내놓은 이 대책을 대체 언제 반영할 건지 묻고 싶다”라고 꼬집었다.
그동안 교사들은 또 동료를 잃었다. 최근 5일간 전국에서 4명의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악성 민원 등으로 지난달 퇴직을 선택한 교사 F씨는 “사람이 죽은 뒤에야 대처하는 사회와 상부 기관이 원망스럽다”라며 “공교육이 무너지고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책임만 떠안는 노동자의 현실을 사회는 외면했다. 그 결과가 지금”이라고 비판했다. 3년차 교사 G씨는 “선생님들이 원하는 건 돈도 아니고 대접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안전하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해달라는 것뿐”이라며 “교육부는 교사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묻고 싶다”라고 지적했다.
고 서이초 교사가 다녔던 서울교대 홍성두 교수는 “제자를 잃은 뒤에도 교육부와 국회, 교육감, 학부모, 학생이,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 두려웠는데, 불행히도 현실이 됐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홍 교수는 “깊은 회의감과 무력감을 극복하는 중에 또다시 교사들을 잃었다”라며 “그저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