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클’ 바리톤과 황홀한 150분, 김주택의 ‘유령’ [쿡리뷰]

‘월클’ 바리톤과 황홀한 150분, 김주택의 ‘유령’ [쿡리뷰]

기사승인 2023-09-06 06:00:26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유령 역을 연기하는 배우 김주택. 에스앤코

23세에 오페라의 본토 이탈리아에서 데뷔해 세계 각지에서 400회 넘게 공연한 바리톤 가수에게 이게 웬 새삼스러운 말이겠냐만, 김주택은 최근 몇 년간 한국 뮤지컬계에서 가장 눈부신 신고식을 치른 배우다. 오페라 무대에서 10여년 간 경력을 쌓은 ‘베테랑 신인’인 그는, 동료배우 최재림이 “대기업 부장직에 스카웃되는 느낌”이라고 비유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유령 역으로 뮤지컬에 데뷔했다. 그가 무대에 등장하는 시간은 150분 중 30분 남짓. 솔로곡은 ‘뮤직 오브 더 나잇’(Music Of The Night) 한 곡뿐일 정도로 분량이 작은 역할이지만, 김주택의 존재감만큼은 확실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가스통 르루가 쓴 동명 소설을 무대로 옮긴 작품. 프랑스 파리 오페라하우스 지하 감옥에 사는 유령이 주인공이다. 유령은 극장주를 공포로 지배하며 예술감독 노릇을 한다. 자신이 점찍은 코러스 가수 크리스틴 다에를 ‘비밀 특훈’으로 단련시켜 오페라 주연배우로 성장하게 한다. 유령은 크리스틴에게 집착한다. 크리스틴에겐 연인 라울이 있다.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오페라의 유령’ 공연 실황. 에스앤코

1986년 초연된 이 작품은 전 세계 누적 관객이 1억6000만명에 달한다. ‘팬텀 오브 디 오페라’(Phantom Of The Opera), ‘씽크 오브 미’(Think Of Me), ‘올 아이 애스크 오브 유’(All I Ask Of You) 등 뮤지컬 문외한도 들어봤을 법한 곡이 수두룩하다. 명작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한국 공연은 2001년과 2009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티켓 가격은 VIP 좌석 기준 19만원으로 라이선스 공연 사상 최고가지만, 자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공연계 관계자는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운 작품이라 관객 수요가 높은 것 같다”고 귀띔했다.

주인공 유령 역을 맡은 배우들은 면면이 쟁쟁하다. 조승우, 최재림, 전동석 등 김주택과 함께 캐스팅된 배우들은 평균 경력이 15년을 웃돈다. 경력 차가 크지만, 노래 실력으로라면 김주택도 선배 배우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이미 세계적인 바리톤 레오 누치로부터 “신처럼 노래 부른다”고 극찬받았던 그다. 부드럽고 풍성하게 퍼지는 김주택의 음성은 ‘뮤지컬 명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쓴 음악과 궁합이 찰떡이다. 각 음계가 지닌 아름다움을 신묘하게 그려낸다. 유령이 돈 주앙으로 분장해 크리스틴과 함께 부르는 ‘노 포인트 오브 리턴’(The Point of No Return)에선 전율과 긴장으로 머리가 쭈뼛 설 지경이다.

지난 3월 부산에서 첫발을 뗀 ‘오페라의 유령’은 7월부터 서울로 근거지를 옮겨 관객을 만나고 있다. 반년여 공연으로 물오른 유령들을 만나고 싶다면 샤롯데씨어터로 달려갈 일이다. 공연은 오는 11월17일까지 이어진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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